2019년 3월 25일 주교회의 정기총회 첫 날, ‘한국 사회 안에서 성소수자의 실태와 과제’를 주제로 연수가 있었다. ‘하늘’과 ‘지인’을 활동명으로 쓰는 두 사람이 초대되었는데 두분 다 게이 아들을 둔 어머니였다. 이들은 성소수자와 그 부모들의 이야기를 담은 「커밍아웃 스토리」의 출판을 계기로 주교들을 만나게 되었다. 그 초대를 귀하게 생각한 하늘은 “주교님들이 당사자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여겨 레즈비언과 트랜스젠더 남성을 한 사람씩 데려갔다. 대학 교수인 지인이 1시간 강의하고 질의응답이 1시간 이어졌다. 질문은 성소수자 당사자들에게 집중되었다. 이런 연수와 만남이 처음이었던 주교들은 놀라움과 포용으로 그들의 말을 경청했다.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고해소에서 성소수자를 그렇게 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미안하다”고 말하는 주교도 있었다.
성소수자들의 수는 적게 잡아도 인구의 3퍼센트가량 된다. 무관심과 편견 심지어 혐오 때문에 한국사회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고 드러내기 어렵다. 그들이 꿋꿋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지탱해주는 부모도 있지만 큰 절망을 안겨주는 경우도 있다. 하늘과 지인 두 사람이 주축이 되어 시작한 ‘성소수자 부모모임’은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당사자들을 대변할 때가 많다. 자식을 위해 성소수자에 대한 사회 인식을 바꾸려 애쓰는 부모들의 모습은 감동적이다. 이들은 또 부모에게 커밍아웃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자녀들의 얘기를 들어주고 자녀가 성소수자라는 것을 알고 ‘멘붕’에 빠진 부모의 얘기를 경청한다. 자신들의 경험과 지식으로 성소수자 당사자와 가족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동반한다. 부모모임의 회원 가운데 수십 명이 가톨릭신자이고 개신교신자도 적지 않다. 지난 시노드 준비 과정에서는 서울의 한 담당 사제가 성소수자들을 만났고 아주 짧게나마 문건에 언급되었다. 여기에도 연결 고리는 부모모임이었다. 교회가 성소수자들을 단죄하거나 음지로 내몰지 않고 그들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개신교 한쪽에서 목회상담 전문가들이 성소수자 그리스도인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상담 프로그램의 이름은 ‘같이 걸을까?’이다.
최근에는 가톨릭 성소수자와 앨라이(지지자)를 아우르는 ‘아르쿠스’라는 단체가 생겼다. 평신도 신학자와 전문가들이 힘을 보태고 일부 성직자와 수도자들도 함께하는데 서울에서는 정기적으로 모여 미사도 봉헌한다. 성소수자 사목 센터가 세워지기를 꿈꾸며 이와 관련한 공부를 하는 사제도 있다. 이렇게 성소수자와 교회 사이에 조금씩 다리 놓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4년 전 주교회의에 초대되었던 하늘은 성소수자 부모모임의 회장이다. 그는 잊을 수 없는 그날의 대화와 경청 이후 아직도 주교님들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