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 - 은퇴 사제의 삶과 신앙]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 (1)

입력일 2003-03-09 수정일 2003-03-09 발행일 2003-03-09 제 2338호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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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된지 44년 3개월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
「다시 태어나도 이 길을」이란 가톨릭 신문의 「기획 특집」을 나는 가끔 글 쓴 분에 대한 존경심 반, 호기심 반 읽어본 적이 있다. 이제 어언 내가 이 글을 쓰게 되니 새삼 세월의 무상함과 빠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글을 쓰고자 하니 썩 마음이 내키지를 않고 망설임이 앞선다. 나의 인생살이, 성직자로서의 삶이 독자들에게 뭔가 참고가 되어 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꼭 써 줘야겠다는 가톨릭 신문 기자의 독촉이 자심하여 수락하기로 하였다.

오늘로써 내 나이 만 76세 1개월이고, 사제가 된지 44년 3개월, 주교가 된지 25년 7개월이 된다. 나는 1927년 1월 21일, 대한날에 태어났다. 그 해는 매우 추웠다고 한다. 지나간 인생 76년 나는 참으로 변화무쌍한 세월을 살아왔다고 할 수 있다. 소년기를 일제 말기에 보냈고, 20대 초반을 이북의 공산 치하에서 살았으며 6·25 전란을 겪었고, 20대 중반부터 30대 초반까지를 로마에서 유학생활을 하였고 사제가 되었으며, 1962년 9월에 귀국한 후는 보좌 신부 생활을 포함하여 7년의 본당 사목, 7년간의 대건 신학대학 교수로 재직하였다. 그리고 주교로서는 5년을 제주에서 지냈고, 그 후 전주에서 7년, 마산에서 14년 만에 지난 해 11월 11일 은퇴하였다. 자랑거리 일 수는 없지만, 아마 이렇게 변화 많은 인생을 산 사람도 드물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런 많은 변화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는 큰 고통 없이 어렵지 않게 살아온 것 같다. 그리고 때로는 나의 인생살이가 통째로 바뀔 수 있는 순간과 사건들이 여러 차례 있었지만 그런 때마다 나의 의지적 결정보다 어떤 큰 손의 힘이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신 것을 느낀다. 주님의 안배하심이었다고 믿는다. 그런 뜻에서, 성녀 소화 데레사는 「모든 것이 은총입니다」 라고 하셨는데, 나도 꼭 같은 심정이다. 가끔 그 때 주님께서 나를 이끌어 주시지 않았더라면 지금 나는 어찌되어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감사의 기도를 바친다. 어떤 면으로보면 나는 「행운아」 라는 표현도 맞는 것 같다.
78년 10월 16일 필자가 제주교구장 재임시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등극미사에 참례, 교황을 알현하고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은 평안남도 평원군 동송면 청룡리라는 벽촌인데, 지금 평양 비행장이 있는 순안에서 약 4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산 동네다. 3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전주교구의 천호 성지를 연상케 하는 산골 마을이다.

「행운아」라는 표현을 썼지만 나는 벽촌에서 살면서도 일제 말기 어려운 시절에도 그리 어렵지 않은 어린 시절을 지냈다. 집이 부유한 편은 아니었지만 배가 몹시 고프다거나 심히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기억이 별로 없다. 할아버지는 한학자셨고, 아버지와 삼촌은 그래도 시골 동네s에서는 인텔리로 통했었다. 우리 집은 사과가 귀하던 그 시대에 과수원을 경영함으로써 생활의 궁핍함을 면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형제들이 초등학교는 물론 평양에 나가서 중학교를 다닐 수가 있었다.

한동안 우리 집은 면양을 치는 부업을 하기도 했다. 일제 말기에 일본 정부가 호주에서 면양을 수입하여 농민들에게 분양하여 양모를 생산케 하였는데 거기에 응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추운 겨울에, 그 때는 가난한 농촌사람들이 면(綿)내의를 사 입기도 어려웠는데 우리 식구들은 순 양모로 짠 내의를 입고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가 있었다. 양을 돌봐야 하기 때문에 그 때에는 학교에 갔다 귀가하면 으레 양에게 풀을 먹이기 위해 양을 몰고 산으로 가는 것이 일과였다. 양을 데리고 산으로 갈 때는 몇 마리인지 분명히 세었다가 한 마리도 잃지 않고 다시 집으로 몰고 돌아와야 한다. 가끔 한두 마리 양을 찾지 못하여 온 산을 헤매는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복음서에 나오는 「착한 목자」 이야기를 머리에 떠올릴 만한 상황인데, 그 때에 나는 성서를 읽은 적도 없고 배운 적도 없기 때문에 그런 생각은 염두에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 양이 밉고 때려주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던 소년이 「착한 목자」 예수님을 따르는 사목자, 더구나 주교가 되었으니 세상에는 가끔 아이러니컬한 일이 있는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