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가장 기본 단위인 가정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성서는 가정을 「하느님을 체험하는 친교의 현장이며 교회 그 자체」, 「하느님의 사랑이 실현된 장소이며 하느님 현존의 구체적 표지」로 가르치고 있지만 그 근본이 훼손되고 있다. IMF 파고가 한 고비를 넘겼다는 신문지상의 다른 면은 연일 청소년과 가장들의 죽음으로 얼룩지고 있어 부활의 기쁨과 함께 다가오는 소생의 계절, 봄이 무색해지고 있다.
IMF형 「연쇄 자살」
지난해 말부터 간간이 들려오던 죽음의 소식은 올 들어 부쩍 늘어나기 시작해 급기야 지난 3월 25일에는 여중생 4명이 20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동반 자살하는 충격적인 일이 벌어져 세간을 경악케 하기도 했다. 이는 지난 1월 10대 소녀 3명이 역시 투신자살한 충격이 채 가시기 전인데다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절에 접한 소식이라 교회에 다가오는 충격의 강도는 더했다.
그러나 이에 비해 교회의 움직임은 단편적이고 피상적이란 느낌을 지울 수 없게 한다.
4명의 여중생이 자살하던 날 어른들의 자살도 잇따랐다. 직장에서 해고 당한 30대 남자 2명이 각각 달리는 지하철과 한강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었다.
이런 연쇄자살은 IMF 경제 난국이 불러온 사회 전반적인 문제와 무관치 않다. 따라서 이런 유의 자살을 두고「IMF형 자살」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현상에만 있지 않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10대 청소년들의 자살은 미숙한 심리상태에서 비롯된 우발적인 일이라고 인식됐지만 근래 들어 자살한 10대들 대부분이 집안 형편이 어려운데다 이를 비관하는 유서를 남겼다는 점에서 단순한 청소년 문제만은 아닌 것이다. 오히려 IMF 경제난으로 촉발된 경제 난국이 가족 구성원을 자살로 내모는 상황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일례로 IMF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이후 「생명의 전화」에 걸려 온 상담전화의 80% 이상이 경제적 고통을 호소하며 「죽고 싶다」는 내용이라고 한다.
두 배 가까운 이혼증가율
이와 더불어 요즘 부쩍 증가하고 있는 이혼의 증가도 IMF가 낳은 무시 못 할 사회현상으로 꼽히고 있다.
서울 강동구의 경우 경제가 본격적으로 침체국면에 접어든 지난 1~2월 두 달간 이혼신고가 2백14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백14건에 비해 두 배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은 지방의 경우 더 심각해 대전지방법원을 찾는 이혼부부의 수가 지난해 한 달에 10여 쌍에서 올해 평균 40여 쌍으로 늘어나 심각함을 더해주고 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가정파탄으로 「이혼고아」라는 신종 단어가 생겨날 정도로 아이를 버리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자 기업인 부도 자살
이런 현상은 교회라고 예외일 수 없다. 기업을 운영하던 신자 기업인이 빚 독촉에 못 이겨 목숨을 끊는가 하면 가족을 버리는 상황이 적잖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교회의 대책은 즉흥적인 수준을 크게 뛰어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질적인 나눔과 아울러 신자재교육 등의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이 교회 전체 차원에서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점심 굶는 학생 부지기수
자살과 이혼으로 인한 가정의 파탄은 초ㆍ중ㆍ고교 등 각 급 학교의 교육 현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3월 27일 부산시 교육청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학교에 도시락을 싸오기 힘들어 굶는 학생이 6천여 명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가장의 실직이나 부모의 가출로 도시락을 못 싸오는 학생이 2천2백여 명에 육박해 지난해 1천3백여 명의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청소년 범죄 증가
그러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런 현상적 수치에 있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이들 수치가 바로 현재 파괴가 진행되고 있는 가정의 숫자와 무관하지 않다는 데 있다.
가정파괴의 현실을 가장 직접적으로 대변해줄 수 있는 청소년 범죄의 경우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0% 가까이 증가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올 들어 2월말까지 두달새 부산 소년 분류 심사원에 수용된 청소년의 숫자 4백35명이 이를 단적으로 드러내주고 있다. 또 전체 수용생 중 가정문제로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경우가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 원인 중 IMF이후 가장의 실직 등 갑작스런 경제난으로 인한 것이 절반 이상이라고 한다.
이 같은 가정의 파괴현상은 성가정을 근본으로 하는 교회 공동체의 기반 붕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서강대학교 변희선 신부는『오늘의 가정파괴현상은 가치의식의 결핍과 부모조차 믿을 수 없게 된 상폐화된 현실에 기인한다』며 『영성적으로 목말라 있는 오늘의 교회에도 책임이 없지 않다』고 밝혔다.
교회 대책마련 시급
변신부는 이 같은 현실의 극복을 위해 『교회가 세미나나 워크숍 등을 통해 현실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고 구체적이며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나갈 것』을 제안했다.
연쇄자살로 나타나는 오늘의 사회현상을 개인적인 부적응의 결과로 보고 가볍게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다. 특히 교회는 IMF체제나 그 이후에도 당분간은 지속될 전염성이 강한 사회병리현상으로 적극 대처해 나가야 할 사회적 책임을 적극적으로 느낄 필요가 있다.
특히 사목자와 평신도 뿐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교육에서 「가톨릭 정신」으로 이들을 새롭게 무장시킴으로써 변화하는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가톨릭운동으로 활성화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