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은 참으로 기구했다.
태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3남매 가운데 장녀로 태어난 상전(31) 씨는 14년 전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자신을 닮은 예쁜 딸이 태어났고,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던 그의 바람도 그대로 이뤄지는 듯했다.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나기 전까지 그도 평범한 주부였다. 다른 여자가 생기자 남편은 생활비도 주지 않는 등 무섭게 변해갔다. 결국 2006년, 이혼을 하고 딸 젠타나(13)와 함께 친정에서 생활해야만 했다.
나쁜 일은 한꺼번에 겹쳐왔다. 돈이 없어 갑상선 치료를 받지 못했던 친정어머니(54)가 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그는 ‘엄마를 살려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한국에 와 돈벌이를 시작했다. 2007년 11월, 상전 씨가 한국에 입국했다. 비행기 표를 포함해 400여 만원을 빚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한국에 들어오기만 하면 어머니 치료비를 벌 수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원금과 함께 3%의 이자를 계속 갚아나갔지만 아직 120만 원의 빚이 남아있다.
처음 취직한 곳은 자수공장이었다. 주, 야간으로 꼬박 근무, 95만 원을 받으며 10개월을 일했지만, 체력이 바닥났다. 1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플라스틱 봉투 공장으로 옮겨 70만 원을 병원비로 송금했다. 어머니의 병원비, 딸의 학비, 한국에 오기 위해 진 빚을 갚고 나면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그가 어머니와 똑같은 질환으로 쓰러졌다. ‘갑상선 암’이다. 현재 의정부성모병원에 입원해있는 상전 씨의 수술비와 진료비는 약 1000만원. 방사선 항암 치료를 계속 받아야 할 것을 생각하면 그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금액이다.
“엄마와 똑같은 암이라는 사실에 무섭고, 두려워 내내 울었습니다. 저보다 딸아이에게 유전이 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더 컸습니다. 엄마를 살리고 우리 딸 젠타나를 학교에 보내기 위해, 제가 빨리 나아 돈을 벌 수 있다면 더 벌어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아프고 힘들지만, 또렷하고 분명한 말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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