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바오로 사도의 로마서 말씀은 우리 신앙의 핵심적인 부분을 알려줍니다. 믿음은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말씀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당신 자신을 알려주시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다르게 표현한다면,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이야기하시고, 우리를 초대하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이 말씀에 귀 기울이는 것은 모든 신앙생활에서 바탕이 되는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듣는 것을 통해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서 하신 말씀들이 참되다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들은 성경들은 모두 이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사야서는 “시온에서 가르침이 나오고, 예루살렘에서 주님의 말씀”이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제 이 말씀과 가르침을 통해 하느님께서는 백성들과 함께 있으며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가실 것이라고 전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이들은 “그분의 길을 걷는”이들입니다. 그 길은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고 가르침은 역시 말씀이기도 합니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들에게 세례를 주고 명령한 것을 가르치라고 마지막으로 이르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함께 있겠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눈에 띄는 것은 열한 제자 중에 “더러는 의심하였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활동하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체험했지만 여전히 의심은 남아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말씀에서 믿음을 시작하고, 말씀에서 힘을 얻고 말씀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해 듣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나 혼자만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에 역시 전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교이고 복음화입니다. 하지만 제자들 중에도 여전히 의심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복음화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교나 선교는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으로만, 외형적인 말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장 좋은, 그리고 필요한 복음화의 모습은 나의 믿음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지 귀에 들리는 소리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성경 안에서 말하는 ‘들음’은 나의 모든 것을 통해 듣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한다면, 말씀을 듣고, 그것을 새기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생활 안에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바로 들음으로부터 오는 믿음입니다.
때로는 다른 이들에게 이런 소중한 믿음의 가치를 알리는 것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믿음을 통해 우리 자신이 우선 기쁨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통해 내가 위로받을 수 있고 그것이 나에게 힘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살아가지 못하는데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그런 전교는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가장 훌륭한 전교는 우리의 삶을 통해 다른 이들을 주님의 말씀에로 초대하는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로움을 얻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을 얻습니다.” 마음만이 아니라 그것을 고백하는 것, 입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해 고백하는 것이 복음화를 말할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감동을 주는 좋은 이야기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들이 모두 나의 것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저 귀로 듣고 흘리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말씀 역시 그것이 삶을 통해 나의 것이 되지 못한다면 다른 좋은 이야기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허규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1999년 사제서품을 받았으며 독일 뮌헨 대학(Ludwig-Maximilians-University Munich) 성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