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내용 생생히 전하는 모자이크로 성당 벽면 장식
라벤나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니아 지방의 작은 도시지만 아드리아 해에 접하고 있어 육상과 해상 교통의 요지에 속한다. 이런 입지적인 조건 때문에 402년 서로마 제국의 황제 호노리우스(Flavius Honorius, 재위 395~423년)는 라벤나를 서로마 제국의 수도로 정했다. 이곳에서 많은 물자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문화도 발전했다.
라벤나에는 ‘갈라 플라치디아 묘당’(본 연재 37회 참조), ‘테오데릭 묘당’, ‘아리우스파 세례당’,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성 비탈레 성당’과 같은 유적지들이 잘 보존돼 있어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찾는다. 특히 성당이나 세례당에서는 초기 교회의 건축 양식이나 오래된 미술 작품도 함께 볼 수 있다. 이 도시에는 성 아폴리나레에게 봉헌된 성당이 두 곳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꼽힌다. 성 아폴리나레 인 클라세 성당(Basilica di Santa Appolinare in Classe)과 그곳으로부터 성인의 유해 일부를 옮겨 모신 새로운 성당, 즉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Basilica di Santa Apollinare Nuovo)이 그곳이다. 이 두 성당은 오래된 역사를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소장하고 있어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여러 모자이크 가운데서 ‘아기 예수님께 예물을 봉헌하는 동방박사들’이 눈길을 끈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박사들이 예물을 바치는 모습이 생동감 넘치게 표현돼 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메시아별의 인도를 따라 아기 예수님을 만났다고 하는데 가스팔, 멜키올, 발타사르라고 한다. 작품 위에는 세 박사의 이름이 적혀 있다. 페르시안 모자를 쓴 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손에 들고 아기 예수님께 선물을 드리려 나아가고 있다. 발아래에는 여러 종류의 꽃들이 피어 있고 생명의 야자수가 세 그루 표현돼 있다.
1500여 년 전에 건립된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이 이처럼 온전히 보존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랜 역사 속에서 여러 차례 사라질 위험을 겪기도 했지만 성당과 그 안에 있는 모자이크 작품은 오늘날까지 전해진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성당의 제단 부분까지도 파괴됐으나 다행히 성당 내부의 모자이크는 피해를 면할 수 있었다. 전쟁과 참화 속에서도 성당 안에 있는 모자이크는 퇴색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여전히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보석처럼 빛나는 모자이크는 성 아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에서만 볼 수 있지만 교회의 뛰어난 예술품은 그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의 성당에서도 모자이크는 아니지만 아름답고 소중한 예술품들이 곳곳에 자리 잡고 있다. 단지 우리가 그 예술품의 가치를 알지 못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따름이다. 조금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성당이나 수도원, 교회 기관이나 부속 건물을 둘러보면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많은 교회 예술품을 만날 수 있다. 이 같은 예술품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서 있으면서도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말없이 속삭인다. 교회의 예술품이 속삭이는 이야기는 가던 길을 잠시 멈추고 그것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이는 사람만 들을 수 있을 것이다.정웅모 신부(서울대교구 주교좌성당 유물 담당) 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87년 사제품을 받았다. 홍익대와 영국 뉴캐슬대에서 미술사·박물관학을 전공했다. 서울대교구 홍보실장과 성미술 감독, 장안동본당 주임 등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