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이 인정한 성모 발현은 16건이다. 그중 발현하신 장소에 성당을 세우라는 메시지는 10건으로 가장 많다. 특히 박해를 받거나 사회적인 영향으로 신앙이 사라지고 있는 지역에 나타난 성모님은 “성당을 세우라”고 전하며 잃었던 신앙을 찾도록 독려했다. 1933년 벨기에 바뇌에서 12세 소녀 마리에트 베코에게 나타난 성모님은 “나는 가난한 이들의 동정 마리아”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작은 경당을 원한다”고 전했다. 곧이어 성모님이 발현하신 자리에 경당이 세워졌고 몇 달 후 열린 경당 봉헌식에는 6만 명의 신자들이 참석해 기쁨을 함께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영향으로 가톨릭 신앙과 멀어진 벨기에인들 앞에 나타난 성모님은 꺼져가는 신앙의 불씨를 다시 피워냈다.
일찍이 루터교와 칼뱅주의가 들어와 가톨릭교회가 위기에 빠져 있던 리투아니아에도 성모 발현은 가톨릭 신앙을 찾는 도화선이 됐다. 1608년, 리투아니아의 작은 마을 실루바에서 4명의 목동들 앞에 나타난 성모님은 맨발로 성자를 품에 안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윽고 “내 사랑하는 아들이 바로 이 땅에서 경배받았다”며 “그러나 이제 이 신성한 땅이 그저 농사 짓고 가축을 놓아 기르는 곳으로 전락했다”고 말하고 사라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칼뱅교를 신봉하던 마을 주민 전체가 가톨릭교회로 돌아오게 됐고, 성모님이 발현하신 성스러운 바위 위에 작은 경당과 제단이 만들어졌다. 이처럼 성모님이 전한 메시지는 리투아니아인들에게 강한 울림이 됐고, 회심의 시작이 됐다. 그 결과 루터교가 지배적인 발트 3국의 다른 나라(에스토니아, 라트비아)와 달리 리투아니아는 현재까지도 인구 80%가 가톨릭 신자다.
■ “항상 기도하라”
1871년 1월 프랑스 북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퐁맹에 황금색 별이 새겨진 푸른색 옷을 입은 아름다운 여인이 지붕 위 공중에서 발견됐다. 여인을 처음 발견한 사람은 12살 외젠 바르베데트와 10살 조제프 바르베데트 형제였다. 이야기를 듣고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들었지만 여인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바르베데트 형제와 11살 프랑수아즈 리셰르, 9살 잔마리 레보세 뿐이었다. 이윽고 여인의 발아래 흰색 판이 나타났고, 그 위에 금색으로 글자가 새겨졌다. “오 나의 자녀들아, 기도하여라. 하느님께서 곧 너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이다. 나의 아들이 움직일 것이다.” 어른들은 볼 수 없는 이 글자를 아이들은 큰 소리로 따라 읽었다. 그리고 성모님이 발현한 그날 프로이센과 전쟁 중이던 프랑스는 휴전 협정을 체결했다. 그리고 이 기적과 같은 사건을 통해 프랑스인들은 주님이 기도를 들어주신다는 믿음을 갖는 계기가 됐다.
이처럼 성모님은 수차례 사람들 앞에 나타나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묵주기도, 성모칠고 묵주기도, 성모송 등 구체적인 기도를 언급하기도 했다.
1877년 폴란드 기에트슈바우트에서 13살 소녀 유스티나 샤프린스카 앞에 나타난 성모님은 “내가 바라는 것, 그것은 묵주기도를 날마다 바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며칠 뒤 다시 나타나 “사람들이 열심히 기도한다면 교회가 박해받지 않을 것이며, 버려진 교구에서도 사제를 받게 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세계 3대 성모 발현 성지인 파티마에서도 성모님의 기도에 대한 메시지가 전해지고 있다. 1917년 5월부터 10월까지 여섯 차례 발현한 성모님은 “전쟁의 종말과 세계의 평화를 위하여 매일 묵주기도를 드려라”, “죄인들을 위해 기도하고 희생을 바치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쳐라”라는 말을 남겼다.
■ 인류를 향한 경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