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어 있는 석관’ 성모님의 육신도 승천하셨다는 표징 관습적으로 ‘영면’ 표현했지만 7세기부터 축일표 ‘승천’ 표기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해 흠없는 영혼과 동정의 몸이 주님께 들어 올림을 받은 것
교회는 8월 15일을 성모 승천 대축일로 성대하게 지낸다. 성모 승천은 마리아에 대한 교의(敎義) 중 하나다. 교의는 성경이나 성전(聖傳)에 기초를 둔 믿을 교리를 말한다. 그런데 이스라엘 성지순례 순례지 중 빠지지 않는 곳이 바로 ‘성모 영면 성당’이다. 영원히 잠든 성모와 하늘로 오른 성모. 도저히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이 사실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걸까.
■ 성모 영면 성당은 마리아의 무덤? 이스라엘 예루살렘 시온산. 최후의 만찬 성당 옆에는 성모 영면 성당이 있다. 시계탑과 원뿔형 지붕, 지붕을 둘러싼 네 개의 작은 탑이 인상적인 로마네스크 양식의 웅장한 성당이다. 성당 순례자들이 반드시 찾는 곳은 바로 성당 내부의 석관이다. 석관에는 실제 사람 크기로 두 손을 모은 채 잠들어 있는 모습의 마리아가 조각돼 있다. 그렇다면 이 석관 안에 마리아의 시신이 있는 것일까. 석관 속을 들여다보기에 앞서 생각해볼 점이 있다. 예루살렘의 동쪽 올리브산 근처에는 ‘마리아의 무덤’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터키 성지순례를 한 이들이라면 알겠지만, 터키 에페소의 ‘성모님의 집’ 역시 마리아가 지상에서의 마지막을 지낸 곳이라고 전해지는 장소다. 이제 앞서 물은 질문의 답을 해보자면, 석관 속은 비어 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부들은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을 통해 “원죄의 온갖 더러움에 물들지 않으시어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는 지상 생활의 여정을 마치시고 육신과 영혼이 하늘의 영광으로 올림을 받으셨다”고 선언한다.(59항) 마리아의 승천이란 영혼만이 아니라 육신까지도 하늘로 들어 올려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리아의 빈 무덤은 하늘로 올라간 마리아의 육신이 지상에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상징인 셈이다. 그렇다면 왜 ‘승천’이 아닌 ‘영면’이란 단어를 사용했을까. 성모 영면(Dormitio)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게 된 배경을 알기 위해선 4세기경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에 이미 ‘성모 승천’에 관한 믿음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신자들은 8월 15일을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로 삼고 있었다. 이 즈음의 신자들 사이에는 마리아의 마지막에 관한 다양한 이야기가 퍼져 있었다. 마리아가 무덤으로 옮겨지던 중 살아나 승천했다거나, 죽은 지 3일 후에 부활해 승천했다거나, 살아있는 중에 승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그 시기가 예수님의 승천 3일 후, 50일 후라는 이야기도 전해졌다. 그런데 순교자나 성인들이 사망한 날을 축일로 삼아 기념하는 관습이 생기자 6세기경에는 ‘하느님의 어머니’ 축일의 이름도 ‘성모 영면 축일’로 변하게 됐다. 이때 ‘성모 영면’이라는 말이 정착됐고, 마리아가 생의 마지막을 보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영면’이라는 용어가 쓰이게 된 것이다. 이후 7세기에는 ‘성모 영면 축일’이 서방 교회의 축일표에도 포함됐는데, 이때 ‘성모 승천’을 기념하는 날로 이름이 다시 바뀌었다.이승훈 기자 josep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