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인가를 주기적으로 ‘쓴다’는 것. 근 30년 만인듯하다. 훈련소를 마치고 막 자대 배치를 받았을 때 주어진 ‘미션’이 있었다. 타자 300타. 독수리타법으로 80타가 최고 기록이었던 내게는 감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였다. 그때부터였다. 타수에 미치지 못하면 얼차려를 각오해야 했던 그때부터였다. ‘쓰기’ 보다는 ‘치기’에 익숙해졌고 제대 후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도 쓰기보다는 자판을 두드리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수월한 치기보다 조금 느리긴 해도 쓰기에 몰입하는 시간이 매일매일 다르게 느껴진다. 모두가 잠든 한밤중. 한 글자 한 글자 준주성범을 필사해 가며 모음과 자음의 한 획 한 획이 조화를 이룬 글씨가 하나의 문장으로, 하나의 페이지로 채워짐에 만족을 느낀다. 3주간의 ‘필사의 노력’으로 손목과 손가락도 단련된 덕분인지 한 페이지 쓰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미션이 반환점을 돌며 밥상머리 말씀 묵상을 제안했다. 식탁에 둘러앉아 자신이 필사한 성경과 준주성범 중 마음에 와닿은 구절을 이야기하고 나누는 시간. 가족들도 흔쾌히 동의했다.

딸은 3월 1일 필사한 시편의 한 구절을 뽑았다. ‘굶주린 이들에게 빵을 주시는 분이시다.’(시편 144,7) 이유를 묻자 “어려운 사람들을 위하는 따뜻한 마음씨가 잘 느껴지는 부분이라고 생각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빠는 ‘너와 모든 선한 이의 마음에 예수님이 계시도록 하라’(준주성범 제2권 8장)를 택했어. 어쩌면 스텔라가 뽑은 구절과도 잘 이어지는 거 같아. 따뜻한 마음을 품으신 예수님을 우리 마음에 모신다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주님의 마음과 닮은 우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말씀으로 저녁 밥상이 한결 풍성해졌다.

이승환 기자 lsh@catimes.kr

■ 생태적 회개 - 윤리적 소비

집에서 용기 가져가 알맹이만 구입

일상 속 ‘환경에 덜 해로운 소비’ 다짐

헤어트리트먼트가 떨어져 늘 구입하던 화장품 매장에서 제품을 둘러보는데 기능성을 더하기 위해 수많은 화학성분이 첨가되고 겹겹의 포장용기에 담겨있는 제품들을 보니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마침 필요한 물건들이 몇 가지 생각난 찰나, 환경을 위해 포장지 없이 알맹이만 판매하는 ‘알맹상점’을 취재했던 일이 떠올랐다. 사순 3주차는 윤리적 소비를 실천키로 했다.

상품이나 서비스를 구매할 때 원료 재배·생산·유통·처리 등 모든 과정을 윤리적으로 판단해 소비하는 것을 ‘윤리적 소비’라 한다. 물론 소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지만 꼭 구매해야 하는 것들은 환경에 덜 해가 되는 쪽을 선택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방문한 알맹상점은 매장 규모도 커지고 제품 종류도 다양했다. 먼저 집에서 가져온 용기에 트리트먼트를 담아 본다. 공정무역으로 생산된 커피 원두와 재활용 가능한 커피 여과지도 장바구니에 담았다. 포장이나 남은 음식을 담기 용이한 실리콘 그릇도 챙겼다. 세제부터 화장품, 식료품 등 쓸만한 물건들이 많아 자주 오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는 필요한 것들을 적어 놓았다 이곳에서 한 번에 장을 볼 참이다.

윤리적 소비는 일상에서도 충분히 가능했다. 라벨이 없는 생수, 플라스틱에서 종이로 용기를 바꾼 과자, 빨대 없는 컵 커피를 사면 된다. 동물실험을 하지 않은 화장품도 생각보다 많이 판매하고 있었다.

윤리적 소비를 시작하며 ‘보통 사람과 다른 선택이 아직은 어려울 것 같다’고 걱정했지만 생각보다 이러한 소비를 함께하고자 하는 기업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알맹상점에 다 쓴 용기를 가져와 익숙하게 세제나 화장품을 담아가는 청년들이 많아진 것만 봐도 세상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을 향한 누군가의 용기 있는 시작이 있다면 말이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

■ 감사 노트

선물받은 새 감사 노트로 마음 다잡아

별일 아닌 일에 감사할 수 있어 감사

긍정을 되찾는 내적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감사한 일을 찾아내는 게 쉽지는 않았다. 자꾸만 없는 일을 지어내서라도 고민을 빨리 넘겨 버리고 싶었다. 그래도 그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딱 한 가지 감사한 일에서도 감사한 의미를 여럿이나 찾아낼 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어느 날 출근했더니 책상에 새 감사 노트가 놓여 있었다.

“혼자 노트를 만들어 쓰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옆자리 스테파노 선배님이 명동 취재 길에 사다 주신 것이었다. 출판사에서 펴낸 감사 노트로 표지는 예쁜 꽃 그림과 함께 하드커버로 제본돼 있었다. 안에는 그날그날의 성경 말씀도 적혀 있었다. 감사한 일뿐 아니라 그날 내 마음을 적어 보는 칸도 마련돼 있었다.

‘나를 생각해 주시는 선배님이 있었다’는 감사에 추위로 얼어붙은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새 노트는 바로 그 감사로 새롭게 출발했다. 그런데 노트에 그 일을 적는 순간, 다른 감사의 의미들도 마치 고구마 줄기 딸려 오듯 떠오르기 시작했다.

깔끔하게 제본되어 출판된 감사 노트라 훨씬 진중해 보였고 휴대도 간편했다. 그날그날 성경 말씀을 보며 놓고만 있던 기도와 묵상에 잠겨볼 계기도 마련됐다. 또 마음을 적어 보는 칸이 주어진 새 노트가 아니었다면, 일상에 쫓겨 정작 방치한 내면을 살펴볼 일은 있었을까.

“날씨가 좋았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게 감사하게 다가왔다. 가령 “우산 필요 없이 차림이 간편해졌다”거나 “햇빛을 즐길 수 있어 행복했다”거나…. 별일 아닌 것에서도 당연하지 않은 감사와 행복, 행운을 여러 개나 읽어낼 수 있는 스스로가 뿌듯해졌다.

통제할 수 없는 불안과 아픔이 또 짓눌러도 인간에게는 여전히 무(無)에서 유(有)를 이끌어 내는 긍정의 창조력이 있다는 걸 절감한 한 주였다.

박주헌 기자 ogoya@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