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헬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 보면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Gone with the Wind)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가 떠오른다. 스칼렛 오하라는 아름답고 예쁜 여성이지만 아주 강인하고 용감해 서슴없이 자신에게 다가온 역경을 피하지 않고 극복하는 매력 있는 인물이다. 소설의 인물인 스칼렛 오하라를 배우인 비비안 리가 잘 표현했다고 당시 비평가들은 칭찬했다. 영화 마지막 장면에 독백하는 비비안 리의 마지막 대사는 오늘날까지 유명하게 회자되고 있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뜰 거야.”(After all, tomorrow is another day) 이 대사는 미국영화연구소(AFI)가 뽑은 명대사 100개 중 1위라고 한다.
야곱은 라반의 두 딸, 레아와 라헬 중에서 라헬을 더 사랑했다. 라헬은 곱고 아리따운 자태를 지닌 아름다운 여성이었다. 시대를 초월해 남자가 예쁜 여성을 좋아하는 것은 어쩌면 만고(萬古)의 진리인가 보다. 라헬은 활발하고 적극적이며 자신감이 넘쳐흐르는 열정적인 성격을 지녔다. 어쩌면 시어머니 레베카와도 닮은 점이 많아 야곱이 매력을 느꼈다는 생각도 든다.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도 단 한 가지 자녀운(子女運)은 없었다. 언니인 레아가 자녀들을 계속 갖게 되자 질투심에 불타 자신의 몸종을 통해서 야곱의 아들을 낳았을 정도이다.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며 노력한 끝에 라헬도 드디어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환호했고 기뻐하며 아들을 더 가지려고 노력했다.
어느 날 레아의 큰아들이 합환채를 밭에서 가져왔다. 아랍인들은 합환채가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있고 뿌리는 독성이 강한데 약간의 마약 성분이 들어있어 임신촉진제로 알고 있었다. 중동지역에서는 수태력 증진 효과가 있다고 믿었던 식물이었다. 라헬은 레아의 큰아들이 가져온 합환채에 눈독을 들여 결국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
그녀의 당돌하고 적극적인 행동은 훗날 야곱과 언니 레아 등 모든 식구가 아버지 라반의 집에서 몰래 도망칠 때 나타났다. 야곱도 모르게 집에서 수호신 상을 훔친 것이다. 사흘 만에 야곱 식구들이 도망갔다는 소식을 듣고 화가 난 라반은 야곱 일행을 쫓아가 잡고는 왜 집에 있는 수호신 상까지 훔쳤냐고 화를 냈다. 라반은 야곱 일행의 숙소와 짐을 샅샅이 뒤졌지만 결국 수호신 상을 찾아내지 못했다. 맹랑한 라헬이 낙타 안장 속에 집어넣고 자신이 깔고 앉아있었기 때문이다.
수호신 상은 보통 나무나 은으로 만들었고 점을 치는 데 사용하기도 했다. 고대 세계에서 이 가정의 수호신 상은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그런데 라헬은 자신은 지금 월경 중이어서 낙타에서 내리지 못한다고 거짓말을 했다. 이처럼 라헬은 자신이 원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성격이었다. 라헬은 여정 중에 막내아들 베냐민을 낳다가 그만 죽고 말았다. 질투심이 강했고 욕심과 집착도 심했던 라헬은 가족 묘지가 아닌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외롭게 묻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