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 특집] 대구대교구 ‘가실성당’에서 찾는 평화의 길
한국교회는 6월 25일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지내며, 6·25전쟁이 남긴 상처를 돌아보고 분단된 남북한이 하나 되는 세상을 위해 기도한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남과 북이 서로 대결과 적대, 심지어 전쟁 위협으로까지 치닫고 있는 지금의 한반도는 오히려 한국교회 신자들에게 더욱 간절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라고 재촉하고 있다.
전쟁의 포화 한가운데 있었으면서도 북한군과 국군, 미군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면서 온전히 성당 건물이 보존됐던 대구대교구 가실성당의 역사를 통해 오늘의 남북한이 추구해야 하는 민족화해의 정신을 찾아본다.
■ ‘아름다운 집’ 가실본당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 가실1길 1에 자리한 가실성당은 ‘가실’(佳室)이라는 말 그대로 ‘아름다운 집’이다. 가실성당에 찾아오는 이들은 “성당과 주변 풍경이 너무나 아름답다”거나 “마음이 평안해져 기도하기에 좋은 곳”이라고들 입을 모은다. 2004년에는 권상우와 하지원이 주연한 영화 ‘신부수업’이 이곳에서 촬영돼 신자, 비신자 모두에게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됐다.
가실성당은 1895년 6월 11일 대구대교구 지역에서는 주교좌계산성당에 이어 두 번째로 설립됐다. 설립 초기에는 기와집 모양 건물을 성당으로 사용하다가 1924년 9월 고딕양식과 로마네스크 양식이 조화를 이룬 현재 성당을 봉헌했다. 올해는 현 성당 봉헌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기도 하다. 성당 설계는 건축가로 유명했던 파리 외방 전교회 박도행(Poisnel) 신부가 맡았고, 본당 주임은 같은 수도회 여동선(Tourneux) 신부였는데 여동선 신부는 망치로 일일이 벽돌을 두드리면서 가장 좋은 것만을 골라 성당을 짓고, 다음 좋은 벽돌로는 사제관을 지었다. 성당과 사제관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3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가실성당을 건축할 때 특별히 기억될 일이 있었다. 주보성인인 안나상을 프랑스에서 들여와 제대 오른쪽 옆에 설치했다.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 예수님의 외할머니인 안나가 딸에게 인자로운 모습으로 책을 읽게 하는 듯한 안나상은 가실성당의 상징이 됐다.
■ 치유의 장소가 된 가실성당
성당 건물은 물론 주변의 아름다운 자연이 ‘평화’를 연상케 하는 가실성당이 6·25전쟁 중 최대 격전지 중 한 곳이었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지만 역사적 사실이다. 가실성당이 위치한 경북 칠곡군은 6·25전쟁 중 임시수도였던 대구와 불과 20여 km 떨어져 있어 북한군과 국군, 미군이 전쟁의 향방을 놓고 사활을 걸고 싸운 곳이다. 1950년 8월과 9월 55일간 이어진 경북 칠곡 ‘다부동전투’ 결과 북한군 2만4000여 명, 국군 1만여 명이 죽거나 다치는 엄청난 인명 피해가 발생했지만 가실성당 건물은 조금도 상하지 않았다.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가실성당 100년사」를 보면, 6·25전쟁 당시 본당 주임이던 김영제(요한) 신부는 가실 마을이 불타는 모습을 보며 슬픈 마음으로 대구 주교관으로 피신한 뒤 다부동전투가 끝난 시점인 1950년 9월 피난길에서 돌아와 보니 성당 주변 거의 모든 집들이 파괴됐고, 본당의 옛 성당도 불탔지만 새로 지은 성당만은 온전히 서 있었다. 가실성당은 북한군과 미군, 국군이 서로 공방을 벌이던 장소였지만, 북한군이 점령했을 때는 북한군 부상병을 위한 야전병원이 됐고, 미군과 국군이 점령했을 때는 역시 미군과 국군 부상병을 위한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면서 포화를 피할 수 있었다. 가실성당 벽돌에 새겨 있는 ‘KELLEY’라는 이름은 야전병원으로 사용되던 시절 치료받던 한 미군이 남겨 놓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단지, 본당 주보성인인 안나상 왼쪽 가슴이 총상을 입어 구멍이 뚫렸지만 그 후 충실하게 보수해 지금은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안나 성녀의 가슴 뚫린 희생의 전구로 가실성당은 오늘날까지 아름다운 본래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고 서술하는 「가실성당 100년사」의 한 대목이 치유의 공간인 야전병원으로 사용됐던 본당 역사를 압축적으로 전달한다.
■ “남북한도 상처 서로 치유해 주자”
가실성당 봉헌 100주년을 맞이하는 본당 주임 박진형 신부(비오·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는 “만약 ‘아름다운 집’이라 불리는 가실성당이 군인들의 야전병원으로 사용되지 않았더라면 이미 성당은 폐허가 됐을 것”이라며 “전쟁이라는 극한 대립상황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장소가 필요했고, 어느 한 구석에는 평화를 갈망하는 장소가 있어야 했기에 가실성당은 그대로 보전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 신부는 그동안 가톨릭교회가 기울여 온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노력이 빛을 못 보고 수포로 돌아간 듯한 현재의 남북 관계에 대해서도 “상대를 자극하는 맞대응 조치를 펴야만 나라의 자긍심을 보여 주는 것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면서 “극한 상황에 놓여 있는 남북한이 서로 대립이 아닌 평화를 갈망해야 하고, 그래야 현재의 위기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신부는 가실성당 역사에 담겨 있는 치유와 사랑의 의미를 상기시킨 뒤 “지금의 남북 관계에서 극한 대결이 발생하는 원인 중 하나는 사람으로서 사익과 권력을 쟁취하려는 욕심에 있다”면서 “상대를 포용하고 인정할 줄 아는 너그러움이 있을 때 하느님의 자비가 머무는 평화와 화해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의 말은 “힘이 있어야 평화를 지킬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는 세태에서 성 요한 23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한창 진행 중이던 1963년 4월 11일 성 목요일에 반포한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 머리말의 한 부분을 떠올리게 한다.
“지상의 평화는 모든 시대의 인류가 깊이 갈망하는 것으로서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질서를 충분히 존중할 때에 비로소 회복될 수 있고 견고해진다. 그런데 여전히 세상의 완전한 질서를 거스르는 개인들과 국가들 간의 불목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한 관계 개선은 무력의 사용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6·25전쟁 때 사람을 살리는 야전병원이었던 가실성당은 조선 말 박해를 피해 전국에서 모여든 신앙선조들이 오고 가던 길에 조성된 ‘한티가는길’ 1구간의 출발지이기도 하다. 가실성당 입구에 ‘순교자의 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것은 이곳에 순교자의 발자취와 정신이 서려 있기 때문이다. 200년 전 순교자들이 목숨까지 바쳐가며 이 땅에서 이뤄지기를 염원했던 것 역시 인간 존중과 사랑 그리고 화해와 평화였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