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님이 가지셨던 희망과 자비관은 서한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님의 자비심에 희망을 가지고’(서한3), ‘우리의 모든 희망은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있고’(서한4) 등 하느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산산이 무너졌을 때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우리는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도 낙담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서한5) 불평 한마디 없이 여전히 겸손하신 모습이다.
우리 역시 어려움에 빠졌을 때는 어김없이 잘 되길 바라는 희망으로 자비를 청한다. 남편의 보이지 않았던 눈은 문경 기도굴을 다녀온 뒤 기적처럼 깨끗해졌다. 눈 암인 것 같다던 의사도 2주 후의 결과에 너무나 놀란 표정으로 이런 예는 없었다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는 당연히 기적으로 받아들여서 의료기록을 요청하려고 하니 그 뒤 두세 달 경과를 지켜봐야겠다고 했다. 얼마나 기쁜 마음으로 최양업 신부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는지.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비밀을 유지하며 하루하루를 기쁘게 지내다 다음 촬영지인 배론성지로 떠났다.
금경축을 맞이하신 후손 최기식 신부님(베네딕토·원주교구 원로사목)의 인터뷰가 최양업 신부님 묘소에서 있었다. 50년 사제 생활을 하며 노력은 했지만, 그 근처도 닿지 않았다며 울먹이는 노사제의 말씀에 눈물이 핑 돌았다. 또 “삶이 내 맘대로 돼요? 돈이 맘대로 벌려요? 건강하고 싶은데 맘대로 돼요? 자식이 맘대로 돼요?”라며 거침없이 쏟아내시는 배은하 신부님(타대오·원주교구 원로사목)의 말씀에 저절로 숙연해지기도 했다. 두 분의 말씀은 그만큼 강렬했다. 순식간에 다큐멘터리의 구성이 짜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곧이어 맘대로 안 되는 인생길을 최양업 신부님은 어떻게 걸어가셨나. 촬영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그 여운은 쉽사리 가시지 않았다.
며칠 후 안과를 간 남편은 다른 쪽 눈이 다시 보이지 않으면서 며칠 동안의 희망이 물거품처럼 사라졌다. 그래 맘대로 안 되는 게 인생이지. 주님의 자비를 청하면서, 최양업 신부님의 전구를 청하면서 간절히 기도했던 남편을 어떻게 위로할까 망설이고 있을 때 남편 안드레아는 ‘주님의 뜻이 있을 거야’라며 도리어 나를 위로해 줬다. 최양업 신부님의 서한을 탐독한 남편은 모든 것을 따라 하는 것처럼 실망했을 때도 어김없이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있었다.
주님의 뜻! 희망했다가 좌절하는 순간 우리가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닐까? ‘아직도 희망을 잃지 않고, 아직도 낙담하지 않으며 여전히 자비를 바라고 있습니다’란 말 속에는 분명 ‘주님의 뜻’을 찾기 위한 최양업 신부님의 처절한 기도가 바탕이 됐을 것이다. 지극히 겸손한 마음으로!
글 _ 박정미 체칠리아(다큐멘터리 ‘한국인 최양업’ 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