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9개월차 규영이 엄마다. 마흔이 넘어 결혼해 다들 노산이라며 걱정했지만, 다행히 결혼한 지 6개월 만에 자연임신이 되어 자연분만으로 아기를 낳고 열심히 모유 수유 중인 ‘육아맘’이다. 신선한 모유를 제공하기 위해 직접 수유하고자 출산 후부터는 맘 놓고 외출 한번 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하루하루 감사함 속에서 몸소 신앙을 느끼며 살고 있다.
사실 처음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런 감사함을 모른 채 불안함과 우울함이 앞섰다. 나이가 있어 임신이 어려울 테니 애초부터 시험관을 시작해 보라거나 임신 준비를 위해 한약을 먹어 보라는 등 주변에서 염려와 우려 섞인 말들 많이 해주신 터라 임신 준비를 1년 정도 잡아놓은 상태였다. 운동도 더 열심히 하고 한약도 먹고 산전 검사도 하며 1년 동안 몸을 만들면 ‘임신이 되겠지’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말이다. 그리고 그동안 벌여놓은 일들도 1년 동안 정리해놓으면 되겠다는 치밀한 계획까지 잡아놨었다. 다행히 좋은 드라마 두 편의 섭외가 들어왔고 드라마 촬영과 경성대 AI미디어학과 학과장을 하며 1년을 알차게 보낼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막 임신 준비를 시작할 무렵, 이미 임신이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기적 같은 기쁜 일인데도 불구하고 촬영 번복과 학교 휴직을 순식간에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언제 다시 일을 시작할 수 있을지 모르는 앞날을 생각하니 그동안 열심히 쌓아왔던 내 커리어가 순식간에 무너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도 때도 없이 눈물만 흘렀다. 두통, 메스꺼움, 속쓰림, 부종, 당 등 임신으로 인해 견뎌야 하는 고생스런 날들이 이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배가 서서히 나오기 시작하면서 갑자기 내 안 깊숙한 곳에서 잉태의 신비로움에 따른 신앙적 생각들이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내 몸에 콩알 하나가 생기더니, 갑자기 콩닥콩닥 심장이 만들어지고 혈관이 하나씩 이어져 몸통과 머리가, 그리고 팔다리가 뿅뿅 생겨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고 나서는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서 필요한 신체 일부가 하나씩 하나씩 만들어지면서 어떻게 온전한 사람으로 완성될 수 있는지…. 이건 신이 행하지 않으면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일이기에 하느님의 대단하심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아기가 태어난 후에는 더했다. 잘 보이지도 않으면서 엄마 품에 안기면 포근함을 느끼고 잘 들리지도 않으면서 엄마의 목소리가 나면 울음을 그치는 모습은 그 어떤 마술쇼보다 신기한 일이었다.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믿고 성당에 가서 하느님의 따스한 품을 느끼며 안정감을 찾는 것과 같은 모습이었다.
엄마가 뭐길래….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도 나를 따르고 나를 의지하고 나를 제일로 생각해 주는 내 아기를 바라보고 있으면 큰 감동이 밀려와 힘듦과 고통은 사라지고 울컥함만 남는다. 아직도 산후통이 있어 일어나서 첫발을 디딜 때마다 뼈가 아프고 아기를 안느라 팔목은 시큰하고 수유하느라 어깨는 말려있고 골반도 틀어져서 처녀 때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래도 내 품에 안기면 뭐가 그리 신나는지 발을 동동 구르며 환한 웃음을 짓는 아기의 모습을 보면 행복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난 하느님처럼 해준 것도 없는데, ‘내가 뭐가 좋다고 이렇게까지 행복해 할까’ 순간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부터 “왜 제 부탁 안 들어주세요? 저 너무 힘들어요”하며, 내가 원하는 것만 쭉 늘어놓고 투정만 부리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아기가 나를 만날 때 해주듯이, 하느님을 만날 때 환한 웃음으로 좋음을 표현하고 함께 계셔주심에 감사하는 내가 되겠다고 다짐해 본다.
글 _ 이인혜 데레사(배우·경성대 AI미디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