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의 공간’에 집중하는 건축계 거장…공간의 공공성 강조한 ‘빈자의 미학’ 추구 단순 명료한 건축물로 경건함 극대화…"건축가로서의 삶, 시간 지날수록 성직(聖職)처럼 느껴져"
지난해 5월 문을 연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문화영성센터. ‘피정의 집’ 하면 떠오르는 아늑하고 편안한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느낌을 준다. 노출 콘크리트를 사용해 현대적인 외벽에 수직으로 길게 뻗은 창문들이 자리 잡고 있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그림자는 방향에 따라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빛이 주는 신비로움에 센터를 찾은 피정객은 자연히 ‘영성’과 연결돼 서서히 내면의 세계로 빠져든다.
설계를 맡은 이는 ‘건축계 거장’이라 불리는 건축가 승효상 씨다. 국내 1세대 건축가 고(故) 김수근 씨의 제자로, 그의 대표 건축물로는 유홍준 작가의 자택 ‘수졸당’, 제주 추사관 등이 있다. 개신교 신자임에도 가톨릭과 불교 등 종교를 가리지 않고 설계에 참여한다. 서울대교구 중곡동성당, 마산교구 명례성지 신석복 마르코 기념성당 등도 그의 작품. 승 씨를 만나 그의 건축관과 신앙에 대해 들어봤다.
굳건히 지켜온 건축 철학 ‘빈자의 미학’
승 씨의 건축을 대표하는 수식어는 ‘빈자의 미학’이다. 그 출발점은 15년간 함께한 스승 김수근 건축가가 작고한 이후 자신만의 건축을 찾던 때였다. 이제는 허물어져 없는 서울 금호동 달동네를 지날 무렵, 그의 어린 시절이 겹쳐 보였다. 이북 출신으로 6·25전쟁 당시 부산까지 내려와 피난민 동네에서 자란 그였다.
“가난한 사람들은 많은 부분을 서로 나눠 쓰며 살아요. 켜켜이 쌓인 집들 사이로 난 좁은 길은 만남이 있는 공동체의 공간이 되죠. 그 모습에서 조화로움을 봤어요. 반면 건축은 돈을 가진 건축주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에요. 그러니 더 많이 가진 사람이 자신의 것을 조금씩 나누자는 거죠. 다른 사람을 위해 비를 피할 공간이라도 내주자는 말이에요. 오랜 시간 한 자리에 남겨지는 건축물이 공공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결국 폐해가 되고 말아요.”
그 뜻에 동조하는 사람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그는 오랜 시간 굳건히 자신의 건축관을 지켜 왔다. 이를 실천하기 위한 항목 중 하나가 바로 ‘영성’이다. 그는 현재 우리 사회에 영성이 결여돼 있다고 봤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40명 정도의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고 해요. ‘물신’(物神)이 세상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 절망의 사회가 된 거죠. 하지만 힘든 순간에 앞으로 나아가 간절히 찾고, 기도할 대상이 있다면 그 삶은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요?”
‘영성의 공간’ 만드는 데 집중
이처럼 그가 추구하는 ‘빈자의 미학’은 영적인 부분과 결부된다. 그만큼 일반 건축뿐 아니라 종교 건축에 관심을 갖고 영성의 공간을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다. 모태신앙으로 이어온 개신교 신자지만, 사이비 종교만 아니라면 타 종교라고 해서 제한을 두지 않는다. 유럽 수도원 등을 순례하며 느낀 감동을 「묵상」이라는 책을 통해 밝힌 적도 있다. 그에 따르면 종교는 보편성을 지닌다. 모두가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는 사회적 가치를 계속해서 지속시키는 것이 종교라고.
‘경건성’은 종교 건축물을 설계할 때 가장 염두에 두는 것이다. “교회는 부름 받은 이들이 모이는 곳이에요. 물리적인 장소가 아닌 그 사람들 자체가 교회죠. 그러니 교회 건축은 신을 모시는 신전이 아니라, 예배를 위한 성전이어야 해요. 건축은 그곳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경건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하죠.”
프랑스 시인 폴 발레리는 ‘명료함만큼 신비로운 것은 없다’는 말을 남겼다. 승 씨도 이에 적극 동의했다. 화려하고 복잡한 것에는 경건성이 깃들 여지가 없기에 그는 공간에 단순하게 떨어지는 ‘빛’이 인간의 깊은 내면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경건성의 바탕은 단순성이라는 것. 그의 많은 건축물이 검소하고 소박한 느낌을 주는 이유다.
건축은 신앙의 표현
승 씨는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가로의 삶이 성직(聖職)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건축은 다른 사람을 위한 공간을 설계하는 일이다. 그가 건축가로서 처음 하는 일은 평면도를 그리는 것.
“평면도를 그리려면 시선을 높이 올려 제3자의 입장에서 바라봐야 해요. 사람들이 더불어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선 혼자 멀리, 경계 밖에 있어야 하죠. 그 밖은 춥고, 외로운 곳이에요. 그러한 삶을 살아온 이가 바로 예수님이에요. 자신을 광야로 내몰아 인류를 구원했죠. 건축은 제 신앙의 또 다른 표현이에요. 내가 지은 건축물이 누군가의 삶에 깊이 관여한다고 생각하면 두려워요. 하지만 어렵더라도 나아가는 수밖에요.”
건축가로 50여 년을 지내며 수많은 설계를 맡았음에도 완성된 건축물이 마음에 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설비·시공사 등과의 협업, 여러 현실적인 제약 앞에서 건축가가 자신의 설계만을 내세우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 대신 아쉬운 마음이 다음에 더 좋은 건축물을 짓겠다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가 바라는 좋은 건축이란 무엇일까.
“좋은 건축은 좋은 사람을 만들 수 있다고 믿어요.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바라는 건 언제나 같아요. 제가 설계한 건축물에서 사람들이 평화를 느꼈으면 하는 거죠. 평화는 아주 우연하고 작은 순간에 얻을 수도 있어요. 일상에서 무수히 마주하는 새벽의 여명, 뺨에 스치는 산들바람 같은 것들이죠. 이미 우리 삶 속에 있는 아름다움을 직접 느끼고,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역할이고, 제가 바라는 건축입니다.”
황혜원 기자 hhw@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