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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으로 변화하는 세상…“더 절실해진 복음적 가치”

이주연
입력일 2025-01-10 15:19:14 수정일 2025-01-14 10:32:15 발행일 2025-01-19 제 3426호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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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과 만남」 한글판 출간…이성효 주교 주도로 번역, 철학자·윤리학자 등 협력한 교황청 산하 연구 결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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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 AI 연구 그룹 지음 / 매튜 J. 고데 외 3인 엮음 / 이성효 주교 외 9인 옮김 / 곽진상 신부·한민택 신부 감수 / 382쪽 / 2만 원 /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지난해 노벨물리학상과 화학상은 모두 인공지능(AI) 관련 연구자들에게 수여됐다. 그만큼 AI는 전세계적인 관심을 모으는 중요한 이슈다. 특히 2022년 등장한 ‘챗 GPT’ 및 관련 소프트웨어는 우리 생활에 많은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하지만 딥페이크(영상 조작물), 사이버 공격 등 AI를 악용한 폐해도 만만치 않기에, AI의 위험에 대해서도 우려가 커지는 상황이다.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제프리 힌턴 교수는 인간을 뛰어넘는 AI가 나올 것이라는 점을 예견하고 이후 그 위험성을 다시 한번 경고하기도 했다.

「인공지능과 만남」은 이런 상황 안에서 교회의 시각으로 ‘가톨릭교회는 인공지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은 이에 따른 윤리적 문제를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등의 질문을 마주한다. 이번 책은 교황청 문화교육부 산하 디지털문화센터 후원을 받아 모인 ‘AI 연구 그룹’의 공동 연구 결과물로, AI가 단순한 기술적 도구를 넘어 인간 존재와 사회적 관계, 신앙생활에 어떤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지를 모색한다. AI와 관련해 교회에서 논의된 모든 연구를 총망라한 최신작이다.

교황청 문화교육부 산하 디지털문화센터가 AI 기술이 일상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해서 신학자, 철학자, 윤리학자들로 구성된 AI 연구 그룹을 결성했고, 이들은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교황청 문화교육부 지원, 미국 「윤리신학 저널」 협력으로 책을 내놓았다.

공동 번역위원회를 결성하고 번역을 주도적으로 이끈 신임 마산교구장 이성효(리노) 주교는 1월 8일 수원 화서동 수원교구 제1대리구청 광암관 제1회의실에서 한글판 출간 배경과 의미 등을 밝혔다. 이 자리에는 곽진상(제르마노·수원교구 서판교본당 주임) 신부가 배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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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 수원교구 제1대리구청 광암관 제1회의실에서 열린 인공지능과 만남 출간 기자 간담회 중 이성효 주교(왼쪽)가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주연 기자

지난해 아시아 시그니스 본부로부터 프란치스코 교황의 홍보주일 메시지 ‘인공지능과 마음의 지혜’ 해설 발제를 요청받았던 이 주교는 9월 23일 일본 도쿄에서 이를 발표했고, 이후 사도좌 정기방문 때 발표문을 교황청 문화교육부 문화담당 차관 폴 타이(Paul Tighe) 주교에게 전달했다. 타이 주교는 노고에 대한 치하와 함께 PDF 파일을 건네주었는데, 그것이 바로 「인공지능과 만남」이었다. 즉시 번역에 착수했던 이 주교는 “AI의 기능과 영향의 중요성을 감안한 ‘의무감’이었다”고 당시 심정을 전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각 시대가 “새로운 학문과 이론은 물론 신발명의 지식을 그리스도교 윤리와 교리교육에 결부시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 실천과 도덕 정신이 과학 지식과 날마다 진보하는 기술과 함께 보조를 맞춰 나가야 한다”고 권고한다. 이 주교는 “이런 면에서 교회는 이미 우리 곁에 있으며, 이미 많은 윤리적 문제를 일으키는 AI에 대해 심도있게 논의하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출간 취지를 덧붙였다.

무엇보다 이번 책은 AI에 대한 최근 연구와 그리스도교 전통과의 진지한 만남을 통해 상호 대화하려는 교회의 의지 표명이다. 아울러 내용적 측면에서 인간과 세상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를 기초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깊은 전통을 AI의 세계와 만나게 하여, 모든 선의의 사람들이 AI 등 새로운 기술의 본질과 사용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다. 구성을 보면, 제1부 ‘인간학적 탐구’는 AI가 제기하는 철학적, 신학적, 인간학적 질문을 다룬다. 제2부 ‘윤리적 도전’에서는 AI가 초래하는 명확하고 현존하는 위험을 얘기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AI 기술의 가장 큰 문제는 ‘사용자가 자아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이다. AI가 사용자의 자기 정체성의 혼란을 부추기기 때문이다. 흔히 거론되는 ‘알고리즘’으로 사용자의 과거 기록뿐만 아니라, 사소한 동작도 사용자 성격과 욕구에 대한 모델이 되어서 그 모델로 나아가게 한다는 것이다.

이를 피하기 위해, ‘침묵의 시간’ 또는 성경 묵상 시간을 자주 갖도록 책은 권고한다.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콘텐츠를 검색해 악의적인 콘텐츠를 클릭하거나 ‘좋아요’를 누르지 않고, 적극적으로 기도와 침묵을 돕는 내용을 검색하도록 당부한다.

무엇보다 책은 AI 문화에 직면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언급한다. 예를 들어 인간 삶에서 중요한 인격적 만남, 마음과 마음의 소통, 온전한 자기 증여(헌신)를 강조하는 복음의 가치가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한지 깨닫게 한다.

이 주교는 “사목자는 디지털 기술이 올바른 사용에 관한 교리교육을 해야 한다”며 “윤리적 가르침과 신앙 실천에 대한 교육을 통합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현재 AI를 통제하는 데 주도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할 위험이 있고, 공익과 연대의 가치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한 이 주교는 “사목자들은 정말로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현재 세상에 큰 영향을 미치는 AI에 대해 설명하고 선용을 강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주연 기자 miki@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