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설이지 말고 도움 필요한 이들에게 ‘지금’ 손 내미세요” 수도자 존재만으로도 유가족에게 위안…상담직 소임 살려 봉사
“한 유가족께서는 신자가 아님에도 제가 수도복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저의 존재에서 위로를 받는다고 하셨어요. 저의 역할은 바로 그것인 것 같아요. 죽음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저를 통해 하느님 나라에 대한 암시적인 희망을 주는 거죠.”
12월 29일 발생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바로 다음 날, 박향란(레오나르도·예수의 까리따스 수녀회 광주관구) 수녀는 힘든 분들을 돕자는 관구장 이순진(야고바) 수녀의 말에 무안국제공항으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그곳은 비탄과 애통 그 자체였다.
“현장은 죽지 못해 숨 쉬고 있는 슬픔의 끝자락이었습니다. 자식의 주검을 안고 계신 성모 마리아의 피에타상 슬픔보다도 더 큰 슬픔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잃은 슬픔과 온전하지 않은 아들 시신의 모습에 날마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 가는 지인도 계셨어요.”
박 수녀는 평소 상담직 소임을 맡아왔기 때문에 유가족들의 슬픔을 나누는 데 보다 적극적으로 임했다. 또한 사회 복지 활동에 나서던 주 아가타 씨와 함께 유가족들과 봉사자들을 위한 봉사와 부스 등의 설치를 위해 노력했다. 매일 현장을 찾아 하루 종일 상주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하루는 다른 지역으로 기도를 다녀온 날 유가족이 “수녀님이 없는 오늘 혼자 버티기 힘들었다”는 유가족의 연락이 오면서 다음날 바로 달려가게 됐다고.
“저희 수도회가 항상 먼저 선택해야 하는 대상은 고통받고 있는 자, 가난한 자와 함께하셨던 설립자의 정신을 이어가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충격적인 슬픔이기에 희생자 179분 모두를 위해서 저희 수도회 차원에서 영원한 안식을 위한 매일 미사와 기도를 계속 드리고 있어요.”
진도 팽목항 세월호 현장에도 함께했던 박 수녀는 첫영성체 때 소원으로 사회 복지 일과 상담 일을 꿈꿨다. 하느님께서는 박 수녀가 바라던 이 모든 것을 수도회 안에서 이루셨다. 때문에 박 수녀는 본인의 역사가 자신이라는 보잘것없는 도구를 하느님께서 수녀회로 불러 쓰신 ‘부르심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이런 슬픈 상황에서 인간의 머리로는 하느님, 예수님은 안 계신 듯할 거예요. 그러나 그분은 지금 울부짖는 이들과 함께하고 계세요. 함께 울고 계시죠.”
박 수녀는 이번 일로 공항에만 방문한 것이 아니라 장흥 장례식장까지 가서 이번 사고로 세상을 떠난 광주대교구 장흥본당 장평공소회장과 함께 희생된 일행분들을 위해 연도를 바치고 다음 방문을 약속했다. 나주에도 찾아가 참사에 희생된 젊은 부부의 장례미사에 참례했다. 이외에도 목포 장례식장 등 공동체 수녀들과 함께했지만, 마음으로나 봉사로나 아픔에 동참하는 이들이 더 많아지길 바라며 박 수녀는 가톨릭신문 독자들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마음의 소리에 움직이십시오. 자비로운 사랑, 위로자이신 성령께서 당신을 통하여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이루고자 하십니다. 용기를 가지고 지금 손길이 필요한 분들을 위로해 주시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세요. 당신이 계셔서 세상은 따뜻합니다.”
박효주 기자 phj@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