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캄캄한 시대일수록 그리스도인은 빛났다

민경화
입력일 2025-01-13 17:59:14 수정일 2025-01-14 13:35:40 발행일 2025-01-19 제 3426호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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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시대 밝혀온 가톨릭 선구자들]

지난 12월 30일 경기도 과천 남태령에서 열렸던 트랙터 대행진. 농민생존권 등 농업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윤석열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며 모인 농민들은 트랙터를 타고 남태령에서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까지 행진했다. 
시위를 주도한 전봉준투쟁단은 2015년 11월 고(故) 백남기(임마누엘) 농민이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출범했다. 생명과 평화를 위해 싸우다 희생된 고인의 정신이 오랫동안 사람들 마음속에 남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된 것이다. 
백남기 농민뿐 아니라 이 땅에는 예수님을 닮은 삶을 살며 세상에 빛을 비춘 수많은 평신도 선각자가 있었다. 그리스도다운 삶, 복음을 실천하는 삶을 보여준 평신도 선각자들을 소개한다.

전남 보성군에서 농사를 지었던 백남기 농민은 농협 민주화 운동, 우리밀 살리기 운동, 땅을 되살리는 되살이 운동 등에 힘썼다. 특히 농민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현실을 비판하며 농민운동에 투신했던 고인은 2015년 11월 14일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민중총궐기’ 집회에서 시위 진압용 경찰 살수차가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졌다. 317일 동안 깨어나지 못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백남기 농민의 생명운동·민주주의와 평화통일 운동을 기억하고자 사단법인 ‘생명평화일꾼백남기농민기념사업회’(이사장 정현찬, 이하 기념사업회)가 2019년 창립, 백남기 생명평화상을 수여하고 있다.

백남기 농민 이전에는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았던 두 인권 변호사가 있었다.

군부독재 시절 인권변호사로 활동했던 고(故) 유현석(요한 사도) 변호사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벗’이라 불렸다. 유현석 변호사는 3·1 명동구국선언문 사건을 비롯해 권인숙 양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 박종철·강경대 군 치사 사건, 강기훈 씨 유서대필 사건 등 주요 시국 공안사건의 변론을 도맡았다. 2004년 유 변호사가 세상을 떠난 뒤 유족들이 기부금으로 유현석공익소송기금을 꾸려 천주교인권위의 모든 공익소송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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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6월 김수환 추기경을 방문한 서준식(왼쪽), 이돈명 변호사.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고(故) 이돈명(토마스 모어) 변호사는 유현석 변호사의 권유로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에 몸을 담고 본격적으로 인권변호사의 길로 뛰어들었다.

그 역시 인권의 암흑시대에 3·1 명동구국선언문 사건, 리영희·백낙청 교수 반공법 위반 사건, 동일방직·원풍모방 시위 사건 등을 변호하며 옥고를 치르기도 하는 등 인권의 가치 실현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인권과 정의를 외치다가 목숨마저 위협받는 시대적 상황 속에서 그가 신념을 꺾지 않았던 이유는 종교적 이유가 컸다.

훗날 이돈명 변호사는 본지 기고를 통해 “지나온 길을 곰곰이 되돌아보면 감히 인간이 생각지 못한 방식으로 당신의 사람을 인도해 주시는 하느님의 숨결을 발견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며 “생을 다하는 날까지 당신의 구원계획을 함께 나눠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전했다.

도시 빈민들의 벗이라 불렸던 고(故) 제정구(바오로) 국회의원의 정신도 여전히 이 땅에 빛을 밝히고 있다. 1973년부터 도시빈민운동에 투신했던 고인은 복음자리마을, 한독마을, 목화마을을 건설해 빈민들에게 안식처를 제공했다. 1985년 천주교도시빈민사목협의회를 창립하고 도시빈민연구소를 세우며 빈민들을 위해 헌신한 그의 정신은 빈민운동가를 위한 ‘제정구 상’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