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영화를 보고 나면 기분이 좋다. 또한 좋은 영화는 마치 좋아하는 성서구절을 만난 것처럼 오랫동안 삶에서 나를 졸아보게 해준다. 영화를 보고 나서 함께 나누는 대화는 또 얼마나 풀요로운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는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참 좋은 매체다.
얼마 전 유난히 마음에 남는 영화를 보았는데 그 여운이 오래 갈 것 같다. 금세기를 보내면서 인류에게 반성의 소지를 가장 깊게 남긴 제2차 세계대전, 그리고 유대인 학살이라는 비극을 희망의 메시지로 승화시킨 로베르토 베니니의 「인생은 아름다워」이다.
엄청난 비극 앞에서도 절망에 빠지지 않고 인생은 아름답다고 역설하는 힘은 시종일관 우리에게 소리내 웃을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던 전반부와는 달리 일곱살 난 아들 죠쉬에게 탱크를 상으로 받는 놀이라고 말한 수용소 생활의 곳곳에서 발견해 낼 수 있다. 그것은 긴장과 안도의 줄 사이를 팽팽하게 당기며 우리에게 영화를 끝까지 지시하게 하는 힘이다.
그 영화에서 발견해낼 수 있는 복음적인 요소는 수없이 많다. 무엇보다도 믿음의 다른 이름인 신뢰와 사랑, 그리고 놀라운 희망이 면면이 흐른다. 주인공 귀도의 공주님인 도라는 인생을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새로운 유모어로 늘 자신에게 웃음을 떠나지 않게 만들었던 아버지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갖고 있다. 그래서 순수하다 못해 천민무구한 마음을 잃지 않았고 아버지와 비슷한 귀도를 만나자 그의 진면모를 금새 알아본다.
그래서 계급과 조건을 뛰어넘어 귀도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그를 택한다. 사랑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인생은 계속될 것이다. 그의 아들에게로, 또한 수용소의 비극과 고통, 그리고 차마 말 못할 인면수심의 살육의 현장에서 천진무구한 동심을 상처받지 않게 지켜내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런데도 그는 아이가 관심을 갖는 진짜 탱크를 걸고 그 비극의 현장을 비켜나게 한다. 그의 노력은 가상타 못해 통곡하고 싶어진다. 사랑의 깊이가 무한하기에. 그래서 마음껏 웃었던 전반부에서의 행위가 정말 안타깝고 죄스럽다. 웃음 속에 감춰진 풍자의 종류는 여기서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좋다.
죠쉬에가 세상에 대해 갖는 모든 아름다운 생각들, 그리고 희망과 사랑과 신뢰는 전적으로 그의 아버지 몫이다. 곧 총살당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광대 걸음으로 죠쉬에의 맑고 순진한 웃음을 유도하고 죽어간 그는 또 하나의 예수 그리스도이다. 안개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맬 때 시체의 산을 발견하곤 잠든 죠쉬에에게 그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뒷걸음치는 그의 부성이 담긴 장면은 잊지 못할 장면이다.
가정의 달, 어린이 날, 어버이 날을 지내면서 더 많이 떠오르는 영화이다. 우리는 너무도 깊은 고통에서 절망했기에 이젠 희망할 수 있다. 세상은 돈없이도 너무나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 인생에서 가장 고귀한 것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