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되뇌어도 애틋한 심정이 된다. 톤즈마을 신자 1만여 명뿐 아니라 수많은 주민들이 ‘쫄리 신부’를 잊지 않고 있다.
수단 현지 시각으로 14일 이태석 신부의 손때가 묻은 학교에서 선종 1주기 추모미사가 봉헌됐다. 이날 미사는 라디오 방송으로 생중계돼 인근 50~60km 반경 내에 있는 주민 모두가 참례하는 형태로 진행됐다. 이 라디오방송국은 이 신부가 선종한 지난해 1월 시작, 남수단쪽 가톨릭교회 소식은 물론 음악과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이 신부 선종 이후 살레시오회는 우경민 신부를 새 선교사로 파견했다. 벌써 5개월이 넘어섰다.
우 신부는 현재 고등학교 건축에 분주하다. 작지만 기숙사도 딸린 학교다. 오는 3월이면 이 건물은 고등학생들로 북적일 예정이다. 고등학교 건물은 이태석 신부가 생전에 가장 세우고 싶었던 건물 중 하나였다. 이 신부는 생전에 초등학교 건물 창고를 꾸며 고등학교 문을 열었었다.
톤즈마을 초·중·고등학생 1200여 명은 이 신부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학업에 더욱 열심이다. 이 신부가 결성한 밴드의 활동도 여전하다. 병원은 봉사자가 없어 케냐에서 파견된 수녀들의 도움으로 운영 중이다.
이 신부 선종 이후 그 뜻을 함께하고자 의료·건축 자원봉사자 몇몇도 톤즈 마을을 찾았었다. 하지만 그 중 건축봉사자는 톤즈마을에서 봉사를 마친 후 귀국 직전 말라리아로 선종해 톤즈 주민들에게 또 다른 아픔으로 남았다. 사랑과 봉사의 실현은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을 만큼 귀한 일임을 다시금 깨닫게 하는 시간이었다.
톤즈뿐 아니라 수단 전역에서는 여전히 많은 봉사자들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우경민 신부는 “평화는 외적인 안정만이 아니라 서로가 만나고 대화하고 이해할 때 이뤄진다”며 “보다 많은 이들이 어떠한 재능이든 나눈다면 큰 선물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또한 우 신부는“하느님께 받은 탈렌트를 다 내어놓았던 그 삶 자체가 바로 이태석 신부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이었다”며 “이곳에서는 사제와 수도자만이 아니라 각자 가진 다양한 재능을 나누어줄 많은 평신도, 일반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아쉽게도 현재 톤즈마을의 모습을 담은 사진은 수주일 후 볼 수 있을 듯하다. 그나마 연결되던 톤즈마을 이메일은 더욱 느려져, 파일 첨부는 요원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