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고통에 대해 열린 감수성을 갖고 고통의 해결을 위해 노력하는 진보적인 삶을 살고픈게 바람입니다』
사노맹 활동으로 지난 91년 3월 구속 수감됐다가 93년 5월에 출소한 김진주(에스텔ㆍ42ㆍ서울 시흥동본당)씨의 말이다.
「노동의 새벽」으로 유명한 시인 박노해씨의 부인이기도 한 그녀는 이제 문학도로서의 새 꿈을 키우며 남편의 석방을 위해 바쁜 삶을 살고 있다.
김진주씨는 최근 YTN의「문화마당」에 출현, 동구권 몰락 이후의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했으나 YTN의 내부사정(?)에 의해 방송이 취소 됐다.
그녀는 『YTN의 내부사정으로 녹화된 프로그램이 방영되지 못한 것은 우리들의 현 주소를 말해주는 상징』이라고 말하고 『그렇지만 이에 굴하지 않고 남편의 석방을 위해 서명운동과 후원회 활동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화여대 약대를 졸업하고 개업했던 그녀가 뒤늦은 나이인 27세 때 노동운동에 뛰어들게 된데는 남편인 박노해씨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대학을 갖 졸업한 직후 후배의 소개로 만난 박노해씨를 통해 그녀는 노동운동 참여를 결심하게 됐다고.
김진주씨는 『남편은 말그대로 시인다운 사람』이라며 『타인에겐 너그러우나 자기자신에겐 준엄한 사람』이라고 전했다.
그녀는 또 『항상 새로운 것,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아 나서는 그는 얘깃거리가 풍부하고 말을 재미있게 잘하는 매력을 지닌 사람』이라며 『선린상고 야간을 졸업했지만 풍부한 독서량으로 대학을 졸업한 내가 오히려 배울 점이 많을 정도로 사고력이 풍부하다』고 말했다.
천주교 인권위원회에서 「박노해 석방을 위한 후원회」를 결성, 현재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 각계 인사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오는 12월 말까지 서명운동을 전개할 예정인 후원회의 일에 바쁜 일정을 보내면서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박노해씨의 형인 박기호 신부와 함께 경주 교도소로 면회를 가는 그녀는 『오는 8월15일 광복절을 기해 석방은 되지 않더라도 감형은 될 것 같다』고 조심스럽게 바람을 피력하기도 했다.
김진주씨는 감옥에 있는 동안 사회과학 서적보다는 오히려 문학서적에 더욱 흥미를 갖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감옥에서 성서를 비롯 불경, 한문 공부 등 문학의 기초를 쌓아왔다.
김씨는 『요즘 유행하는 「후일담 문학」이 80년대를 너무 감상적으로 그리고 있어 안타깝다』며 『80년대의 치열한 우리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서는 앞으로 시간이 더 흘러 2천년대에야 비로소 가능할 것 같다』고 진단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