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관용」은 믿는이의 의무

입력일 2012-08-21 11:41:01 수정일 2012-08-21 11:41:01 발행일 1995-01-15 제 1937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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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용(寬容)과 용서(容恕). 이 두낱말은 뜻이 비슷하면서도 용서보다는 관용이 내용이나 스케일면에서 더 넓게 사용되고 있다.

사전적 풀이를 보면 관용은 일반적으로 맘을 너그럽게 받아들이거나 용서하는 것을 뜻하고, 용서는 잘못이나 죄를 꾸짖거나 벌하지 않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관용은 특히 자기로서는 찬성하기 어려우나 남의 권리로서, 남의 사상이나 의견 등을 인정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면 관용은 남을 받아들이는 것과 용서하는 것 두가지를 다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유엔이 금년을「관용의 해」(Year of Tole-rance)로 정한것은 인종과 민족과 종교가 서로다른 사람들이 지금 세계 도처에서 벌이고 있는 온갖 분쟁과 반목과 질시를 관용으로 해소시켜 보려는데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어쨌던 관용과 용서, 이 두 낱말은 일반 사회적으로도 널리 통용되지만, 종교적으로, 그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교에서 가장 흔하고 폭넓게 사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한마디로 그리스도교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관용과 용서가 없었다면 애당초 생겨날 수 없었던 종교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이 관용과 용서는 그리스도교 출범때부터 신자들이 실천해야할 가장 중요한 덕목중의 하나로 여겨지고 강조돼왔다. 곧 하느님의 관용과 용서의 은총으로 죄를 사함받고 복을 누리며 살게된 크리스찬은 자신이 받은 그 관용과 용서를 다른 사람에게도 베풀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따라서 크리스찬에게 이같은 관용과 용서가 없다면 그신앙은 거짓 신앙이며 무가치한 신앙일 수 밖에 없다.

성서에서 하느님은 「당신 백성에게 관용을 보이심으로써 의인은 사람들을 사랑해야 된다는 것을 가르쳐주셨다」(지혜12,19)고 전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본지와 가진 신년대담에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인간으로 오시어 죽으신 그리스도는『관용의 표상」으로써, 관용은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믿는 것이며, 그 관용을 사는 것은 믿는이의 최대 의무』라고 지적했다.

유엔이 정한 95년 관용의 해. 이 해는 우리 교회와 무관할 수 없다. 이 해는 크리스찬 각자의 관용의 그릇이 어느정도인가를 되돌아보게 한다. 나의 관용의 그릇은 얼마만한가? 남을 존경하고 받아들이는 그릇, 잘못한 상대방을 용서하는 그릇, 마지막으로 무조건 사랑하는 그릇 중 어디에 속하고 있는가? 나의 그릇을 재보고 그 그릇을 키워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