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61) 기도와 엉덩이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2-10-09 수정일 2012-10-09 발행일 2012-10-14 제 2815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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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는 어느 수도회 수사님 한 분이 계시는데, 그분은 기도하기를 무척 좋아하십니다. 그분은 기도하기 위해 태어난 분이라고나 할까? 기도를 즐기는 분이랍니다. 원래 수도자가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분의 삶이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닐지 몰라도, 제게서 그분의 삶은 ‘기도’ 그 자체였습니다. 때때로 수사님이 생각이 나서 수다를 떨고 싶으면 그분이 사시는 수도원에 무작정 찾아가고는 합니다.

그날도 수사님을 뵈러 수도원에 찾아갔습니다. 안내실 담당 수사님께 그 수사님 면회를 신청했더니 자연스럽게 성당에 가셔서 그 수사님을 찾으셨습니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오시던 그 수사님은 저를 기쁘게 맞이해 주셨습니다. 차를 나누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눈다고 했지만 그날도 결국 저만 열심히 떠들었습니다. 그분은 사는 이야기라고 해봤자 하루 일상을 너무나 똑같이 사시는 분이라서 그런지 언제나 저의 수다를 깔깔거리며 좋아하셨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 수사님께 물었습니다.

“수사님, 종일 기도만 하시니 좋겠어요.”

저의 이런 빈정거리는 듯한 질문에 수사님은 웃으시며 “수도자 중에 어떤 분은 강의나 강론을 잘하고, 어떤 분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상담과 면담을 잘 해주고, 어떤 분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재능들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런데 나는 원래 뭐 하나 할 줄 아는 것이 없어서 작은 소일거리를 하면서 형제들 모두가 외출하면 집도 지키고. 그러다가 시간이 허락하면 기도를 해요.”

저는 다시 물었습니다. “그런데 수사님, 정말 궁금한데요. 어떻게 하면 기도를 잘 할 수 있어요?”

이런 나의 철없는 질문에 수사님은 “기도는 엉덩이(실제로는 ‘궁뎅이’라고 표현하셨음)로 하는 것 같아요. 영성적으로 훌륭한 분들은 깊이 있는 성찰을 통해 머리와 온몸으로 기도를 하지만 나는 그런 것 잘 몰라요. 그냥 내 엉덩이가 좀 무겁고, 내 엉덩이가 성당에 앉아있기를 좋아하니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뿐이에요. 그래도 각자 자신의 몸이 원하는 곳에서 하느님, 그분의 오묘한 사랑을 나누다 보면 몸이 반응하지 않겠어요. 나는 성당에서 엉덩이 깔고 앉아서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그냥 앉아 있는 것, 그것 자체가 좋은 것뿐이에요. 내가 성당에 있으면 기도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아요. 그냥 엉덩이 깔고 앉아서, 십자가나 감실도 보고 그러다 창틈으로 보이는 하늘도 보고, 바람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도 느끼고 해요. 그리고 그 느낌을 하느님께 그냥 말씀드리고 그래요. 나는 기도할 줄은 모르고, 성당에 가서 엉덩이 깔고 앉을 줄은 알아요.”

내 몸이 원하는 곳에 가서, 내 몸이 느끼는 그 느낌으로 하느님과 대화하는 것. 문득 제 엉덩이는 아직 성당에 가서 앉아있기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럴 날이 언젠가 오겠지요. 제 엉덩이가 성당에 앉아 있기를 좋아하는 그날이말입니다.

강석진 신부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