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획/특집

[가톨릭신문이 만난 사람] 스케이트 선수 박승희 씨

이주연 편집부장
입력일 2014-07-15 수정일 2014-07-15 발행일 2014-07-20 제 2904호 2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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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 넘어졌다 일어선 ‘오뚝이’ … “결국 금메달 목에 걸었죠”
불운 부상 딛고 소치 올림픽 2관왕
평창 올림픽 이후 현역 은퇴 예정
‘패션 업계’서 제2의 인생 계획 
어려운 이들 돕는 해외봉사도 하고파
9월 전지훈련 및 10월부터 시작될 경기 시즌을 준비 중이라는 박승희 선수는 “스케이팅이 아직 비인기 종목이라서 더욱 많은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민 오뚝이’. 2014년 소치 동계올림픽 2관왕 박승희(리디아·22·수원교구 병점본당) 선수에게는 올림픽 이후 ‘오뚝이’라는 별명이 따라 다닌다.

한국 시각으로 지난 2월 13일, 러시아 소치 아이스버그 스케이팅 펠리스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결선에서 두 번이나 넘어지면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한국 국민들에게 여자 쇼트 트랙 첫 올림픽 메달을 선사했던 모습에서다.

금메달을 놓치고 부상을 당한 상황에서 속상할 법도 한데, 그의 ‘쿨’한 소감은 국내외 언론에서 보도될 만큼 화제가 됐다.

“머리 속에 든 생각은 단 한 가지 : 나는 결승점에 빨리 도달해야 한다(The only thing I thought was : I need to go faster to the finish line). 나에게 제일 소중한 메달이 될 듯하다. 모든 게 운명일 것이고, 난 괜찮다. 대한민국 파이팅!”

국제빙상연맹(ISU)는 공식 홈페이지와 페이스북을 통해 어록을 알렸고, 이런 박 선수의 밝고 긍정적 모습은 팬들에게 잔잔한 감동을 남겼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도 축하메시지를 통해 “어려운 상황에서도 오뚝이처럼 일어나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깊은 감명을 안겼다”고 했다.

하지만, 두 번째 넘어지면서 입은 무릎 부상은 1500m 경기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숱한 훈련 속에 준비했던 경기, ‘뛰고 안 뛰고’의 차이는 엄청난 것이었다. 특유의 긍정적 낙천적 성격을 자처하는 박 선수도 부상 때문에 경기를 단념해야하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평창 올림픽’이 기다리고 있기는 했지만, 나이 등을 생각할 때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임했던 소치 올림픽이었다. 그러나 무리할 수 없었던 상황. ‘남은 시합은 아예 접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걸 내려놓았다.

올림픽 일정에 동행한 임의준 신부(서울대교구 직장사목부 겸 태릉선수촌 경당 담당)로부터 병자성사를 받았고 부상 치료와 함께 매일 미사 참례와 기도에 시간을 쏟았다.

그리고 쇼트 트랙 1000m와 3000m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계주할 때까지 만이라도 낫게 해달라’는 기도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취미로 시작한 스케이트

박승희 선수가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던 것은 9살 때였다. 어머니 이옥경(데레사·48)씨 손에 이끌려 재학 중이던 초등학교 빙상부 가입을 하면서 부터다. 언니 박승주(마리아·24)·동생 박세영(이냐시오·21)도 함께 였다. 어머니 이씨에게는 중학교 시절 ‘사랑의 아랑훼스’라는 피겨스케이팅 선수들 사랑 이야기를 그린 일본 만화가 깊은 여운으로 남아있었다. 당시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스케이트를 가르쳐 보겠다”는 마음을 가졌다고 한다. 그것이 현실이 됐다.

삼남매는 일주일에 한 번씩 스케이트를 타는 것에 빠져들었다. 순발력·운동신경을 갖춘 이들은 대회에 나갈 때마다 두각을 나타냈고, 그러다 보니 어느 날 ‘선수’의 길에 접어들어 있었다.

이들 삼남매는 이번 소치 올림픽에 함께 국가대표로 출전, ‘소치 국가대표 삼남매’라는 별칭을 들었다. 박승희 선수와 박세영 선수는 쇼트트랙에, 박승주 선수는 스피트 스케이팅에 나섰는데, 삼남매가 태극마크를 달고 올림픽 국가대표로 뽑힌 것은 국내 첫 사례다.

박승희 선수의 사인.

애물단지 애증 덩어리

“스케이트는 나를 힘들게도 했다가, 기쁘게도 했다가 울고 웃기는 애물단지죠. 원래 잘 울지 않는 성격인데, 스케이트 때문에 정말 많이 울었어요.”

“초등학생 때 멋모르고 시작했던 스케이트 선수 생활이 이렇게 힘든 건지 몰랐다”는 박 선수. 나이 어릴 때는 운동하고 연습하는 것 때문에, 매년 ‘스케이트를 벗겠다’고 했다. 그만큼 고된 운동량이 힘들었다. 이제는 점차 나이를 먹다보니, 혼자 책임지고 해결해야 할 것들이 많아져서 어려움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도 경기 시즌을 끝내고 휴식기를 가지다가 다시 시합 준비를 위해 링크에 들어섰을 때 ‘새로 시작하는’ 재미를 맛본다. 푸념도 덧붙여졌다. “힘들 때가 더 많아요.”

“항상 ‘겸손’이라는 단어를 염두에 두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는데 거만해지지 않고 공손하려고 노력해요.”

그의 이런 다짐에는 항상 겸손한 스케이터로서 자질을 강조한 어머니 역할이 컸다. 또 언니·동생이 동료 선수로서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큰 힘과 격려였다고 했다.

어머니의 힘 신앙

사실 이번 소치 올림픽을 통해 박승희 선수를 비롯 삼남매가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그와 함께 세간의 관심을 모은 것은 어머니 이옥경씨다. 올림픽 국가대표 삼남매를 키워낸 그의 노력과 역할 때문이다. 박 선수가 500m에서 부상을 당하고 동메달을 받았다는 소식에 “승희가 좋아하는 나물비빔밥에 된장찌개 해놓고 기다리겠다”고 ‘쿨’하게 응답, 모전여전이란 반응을 얻었다.

그간 이씨가 삼남매를 태우고 운전한 시간은 1년에 5만㎞ 정도다. 14년여 동안 총 50만km를 달렸다. 승희씨를 비롯 언니 승주·동생 세영씨의 경기 종목 훈련 장소가 각각 달랐기에 이씨는 과천 빙상장, 서울 태릉 빙상장 등으로 하루에도 몇 번씩 달려야 했다. 경부고속도로를 하루에 6번 주행한 적도 있다.

그런 삼남매들과의 시간이 힘들지 않았을까. 이 씨는 금전적 어려움은 있을지언정 그 외 다른 것은 크게 고충을 느끼지 못했다고 했다. 오히려 “세 명이 함께 시합을 하고 훈련을 하면서 서로 서로 끌어주고 당겨주고 하니 도움이 되는 것 같더라”고 했다.

‘운동은 아이들에게 직장과 같은 것인데, 참견하고 평가하고 하면 기분 나쁠 것’이라는 의견을 보인 이씨는 그런 틀 안에서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고 말했다.

삼남매 경기를 보는 심정은 어떨지 궁금했다. “그저 넘어지지 않고 다치지 않기를 바랄 뿐”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열심히 자신들이 노력한 것만큼 성과를 내서, 허무한 시합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했다. 메달은 그 다음 문제라는 것. 이씨는 자녀들 모두 함께 올림픽에 출전한 것으로서 이미 그간 꿈꿔왔던 소망을 이뤘다고 했다.

6월 22일 견진성사 예식 후 박승희 선수가 염수정 추기경에게 꽃다발을 건네고 있다.

‘하느님’은 ‘부모님’

박 선수 어머니 이옥경씨는 오랜 구교우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러한 배경으로 인해 박 선수 역시 어머니 이씨와 외조부·조모로부터 신실한 신앙교육을 받았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에 가면 저녁마다 둘러앉아 기도서를 펴고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선명합니다. 당시에는 기도하는 게 지겹고 싫기도 했는데 지금은 신앙생활에 좋은 자양분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예요”.

그는 하느님이 마치 ‘부모님’ 같은 존재라고 했다. 한때 여러 가지 이유로 성당에 나가지 않았는데, 어느 날 어머니를 따라 무심히 미사에 참례했다가 따뜻하게 다가오는 하느님 손길을 체험했다고 했다.

“기도에 소홀했다고 꾸짖으시는 듯한 느낌도 있었지만, 포근하게 맞아주시는 하느님도 느꼈어요. 무언가 ‘울컥’ 하는 심정이었죠. 그때부터 미사도 빠지지 않고 참례하고 성당에도 잘 다니고 있어요.”

묵주반지 덕에 여러 신자들이 인사를 건네 오고 반가워하는 모습에 신자로서의 자긍심도 갖게 된다는 박 선수. 얼마 전 교황 방한을 앞두고 신자 연예인들과 함께 촬영한 ‘코이노니아’ 뮤직비디오도 인상 깊다고 했다.

“체육인으로서 참여한 경우는 제가 유일했는데, 함께한 배우 연예인들이 ‘가톨릭 신자’라는 공감대 만으로도 한 목소리가 되어 작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지난 6월 22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언니 승주씨· 동생 세영 군과 함께 염수정 추기경 주례로 견진성사를 받은 박 선수는 “신자 체육인으로서 많은 신자분들의 기도를 받았던 만큼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야할 것 같다”고 했다.

그런 신앙의 흐름 속에서 잊지 않는 것은, ‘늘 밥을 먹듯 산소를 마시듯, 하느님을 찾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어머니의 조언이다. 신자 박승희 선수에게는 곧 신앙의 화두가 아닐 수 없다.

인터뷰 중 어머니 이옥경씨와 함께 웃고 있는 박승희 선수.

은퇴 후 ‘패션’ 업계 도전

박승희 선수는 앞으로 평창 올림픽에 한번 더 도전한 후 현역에서 은퇴할 계획이다. 그 대회에 동생 세영씨와 역시 쇼트트랙 선수인 사촌동생 정지웅(아브라함·18)씨가 함께 출전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은퇴 후에는 ‘패션’ 부문에서 일하고 싶다고 했다. 늦더라도 제대로 공부를 해서 ‘옷’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싶단다. 무언가 다른 일을 하면서 제2의 도전을 하고 싶다는 포부를 보였다. 가족들과 함께든 혼자든 ‘해외봉사’를 나가는 것도 계획 중이다.

9월 전지훈련 및 10월부터 시작될 경기 시즌을 준비 중이라는 박 선수는 “스케이팅이 아직 비인기 종목이라서 더욱 많은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그런만큼 꾸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당부를 잊지 않았다.

오른팔에 새겨진 문신이 눈에 띄었다. 2년 동안 고민하다 감행(?)했다는 문신은 세례명 ‘리디아’의 영문 스펠링과 십자가 모양이었다.

“신앙인으로서 정말 중요한 의미라 생각해서 안 지워지도록 몸에 남기고 싶었어요.”

20대다운, 발랄한 그만의 하느님 사랑이 느껴졌다.

■ 박승희 선수는

- 수원대학교 사회교육원 체육학과 재학 중

- 수원 경성고등학교 졸업 (2010)

- 화성시청 입단 (2010)

- 소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금메달(2014)

- 소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2014)

- 소치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500m 동메달(2014)

- 제7회 아스타나-알마티 동계 아시아

경기대회 여자 1000m 금메달(2011)

-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000m 동메달(2010)

- 밴쿠버 동계올림픽 쇼트트랙 여자

1500m 동메달(2010)

-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2010)

- ISU 쇼트트랙 세계선수권대회 여자

1500m 금메달(2010)

- ISU 09/10 쇼트트랙 월드컵 1차 대회 여자

3000m 계주 금메달(2009)

- ISU 07/08 쇼트트랙 월드컵 2차 대회

여자 1000m 금메달(2007)

- ISU 06/07 쇼트트랙 세계 주니어선수권

여자 2000m 계주 금메달(2007)

이주연 편집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