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63) 초보 주임 신부의 사랑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2-02 수정일 2014-12-02 발행일 2014-12-07 제 2922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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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사제
사제 서품을 받은 후에 늘 특수 사목 신부로만 지내던 후배 신부가 서품 받은 지 십 수년차가 훨씬 지난 후에야 주임 신부가 되었습니다. 주임 신부가 된 후배는 나에게 자신의 본당에 한 번 방문해 달라고 했지만, 서로 여건이 맞지 않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식당에서 그 신부와 우리 동창 신부들 몇 사람이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날은 언제나 말없이 성직자, 수도자들을 위해 봉사를 하는 부부가 축일을 맞아, 동창 신부 몇 명이서 조촐하게 축하를 해 주던 자리였습니다. 후배 신부를 만난 나는 서로 반가워 식당에서 부둥켜안으며 인사했고, 식탁에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 중에 후배 신부는,

“석진이 형, 요즘 정말 시간이 없어!”

“그래? 에고! 아마도 처음으로 주임 신부 나간 것이라, 정신이 하나도 없는 것이겠지! 그런데 너희 본당에는 일이 많아?”

“음, 본당 일은 그럭저럭 할 만한데, 내가 기도할 시간이 부족해!”

“기도할 시간이라니?”

덩치는 산적 같은데, 목소리는 샌님 같은 후배 신부가 사목 생활 중에 시간이 없다는 말을 듣고는 본당 주임 신부가 되어 본당 생활에 적응하고, 업무 파악하고, 그 밖의 사목적인 일 때문에 시간이 없다는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미사 마치고 신자들하고 인사를 나누다 보면 주로 할머니들이 나에게 이런저런 사연을 말한 후 기도를 부탁하셔. 그렇게 기도 부탁을 듣게 되면, 신자 분들이 집으로 돌아가신 후에는 성당 안으로 들어가서 그분들의 지향을 가지고 기도를 해. 미사 때에 미사 봉헌이 있으면, 미사 후에도 사제관에 돌아와서 그 미사 지향을 두고 다시금 기도를 하게 돼. 그렇게 기도하는 시간을 자주 갖다보니, 기도 시간이 좀 모자라는 것 같아. 그래서 요즘은 아침 새벽에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하려고 해. 그리고 기도하다가 미사 시간이 되면 미사 들어가고. 그리고 미사 후에 신자 분들 인사를 나눈 후에 다시 기도를 하고.”

그 신부 말을 듣는데, 순간 나는 ‘이 신부가 기도에 미쳤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뒤집으면서 원래 우리 삶이 기도에 푹-젖어 살아가는 삶인데… ! 하지만 평소 그렇게 살아가지 못하다 보니, 다른 이들이 기도에 헌신하는 것을 보면 부러움과 질투의 이중감정이 들어, 상대방을 이상하게 느끼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형, 그런데 우리 본당 할머니, 할아버지 신자 분들이 나에게 기도를 부탁하시는 모습에서, 이 표현이 어울리지는 않지만, 그 모습이 내 딸, 내 아들 같다는 마음이 들더라. 그래서 기도 부탁을 받으면, 나는 아버지가 사랑하는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 하듯이, 내가 할 수 있는데 까지 기꺼이 그 분들의 정성스러운 바램들을 두고 기도를 하게 돼. 그리고 혼자 생각을 하지. 우리 본당 신자 분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고, 또한 내 기도가 하느님 대전에 닿아서, 그 분들의 마음이 하느님에게 잘 전해졌으면 좋겠고….”

좋은 사제는 사제 스스로 한 걸음, 한 걸음, 좋은 아버지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려는 노력을 통해서 되어가는 듯합니다. 그리고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제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좋은 신자를 만나는 것 또한 서로에게 진정한 기쁨이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