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72) 못 벗어유!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2-03 수정일 2015-02-03 발행일 2015-02-08 제 293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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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후면 우리 수도회에 새로운 지원자들이 입회를 합니다. 이 맘 때면 예전에 내가 성소 담당할 때 만났던 유난히 착한 성품을 가진 형제가 생각납니다. 그 형제는 일 년이 넘도록 만나는 동안 수도 생활을 선택함에 있어서는 늘 주저하였습니다. 그래서 가정적으로는 어떤 환경인가를 보기 위해서 그 형제의 부모님을 면담하러 시골집에 갔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부모님은 오래된 천주교우 집안이었고, 나와 면담 내내 무릎을 꿇고 계셨습니다. 편하게 앉으시라고 해도 부모님은 결코 그럴 수 없다며, 무릎을 꿇고 앉으시기에 할 수 없이 나도 따라 무릎을 꿇고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사실 그때 다리에 쥐가 나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자녀의 성소에 대한 부모님의 생각은 단호하셨습니다. 하느님이 부르셨으면 무조건 “예”라고 대답해야 한다며, 만약에 아들이 수도회에 들어간다면 무조건 찬성을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그 모습에 감사를 드리며, 그 형제와 집을 나왔습니다. 사실 기분도 좋았지만 며칠 동안 전국을 다니다 보니 몸도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에게 우리 함께 목욕탕에 가서 따뜻한 물에 몸을 푹 담그며 피로를 풀자고 했더니 망설이는 눈치였습니다. 암튼 나는 그 모습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서, 시내로 향하는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읍내에 가서 눈에 보이는 목욕탕을 찾은 다음, 함께 들어가자고 했더니 그 형제는 내가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나는 협박 아닌 협박을 했습니다. ‘형제가 남자인지 아닌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러니 목욕탕에 함께 들어가야 한다.’ 그러자 그 형제는 ‘나는 남자 맞아유!’하면서 목욕탕까지 들어갔습니다. 그런 다음 옷을 벗고 탕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그 형제는 옷을 벗지 않고 있었습니다.

“형제, 목욕탕에 와서 옷 안 벗어?”

그러자 그 형제는 나와 시선을 안 마주치면서 하는 말이,

“어떻게 신부님 앞에서 옷을 벗어유. 못 벗어유. 어떻게 벗어유!”

나는 심각한 표정으로,

“형제, 혹시 여성 아냐? 수녀원 가는 고민 때문에 그동안 주저한 것 아닌가!”

그 말에 그 형제는 하는 수 없이 옷을 벗고, 목욕탕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가볍게 씻고, 큰 탕에 들어갔습니다. 따스함이 온몸을 감싸고, 편안함에 온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형제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의 얼굴에서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었습니다.

“형제 남자 맞네.”

그렇게 목욕탕에서 둘이 장난도 치고 하다가 다 씻은 후 근처 식당에서 설렁탕을 먹는데, 그 형제가 말했습니다.

“수도원 들어갈께유! 신부님과 목욕탕에 있는데 너무나도 행복했슈! 지는 어릴 때부터 수도자가 되고 싶었지만, 부모님은 거룩한 사람들만 그 길을 걸어갈 수 있다고 했지유! 그러다 보니 저는 그 삶을 살기에 어림도 없다고 생각만 했는데, 신부님과 함께 목욕탕에 있으니 신부님도 거룩한 사람이 아니라, 나와 똑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유! 그래서 나도 자신감이 생겼시유.”

일 년 내내 성소 식별할 때 안 생기던 성소에 대한 확신이 목욕탕에서 옷 벗고, 탕 속에 10분을 앉아 있으면서 생기다니! 그 후, 형제는 우리 수도회에 입회했고, 지금은 수사 신부님이 되어 성실하게 좋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