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288) 좋은 강론 좋은 삶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6-02 수정일 2015-06-02 발행일 2015-06-07 제 2947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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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구 동창 신부가 모친의 팔순을 맞이하여 본가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다녀온 후 몇몇 동창 신부들과 일이 있어 만났습니다. 그 신부를 보자 나는 ‘팔순 모임’이 어땠는지 물었더니, 너무 좋았답니다. 다른 것 보다, 그날 식사를 마치고 형제들이 밤늦게까지 부모님 집에 모여서 부모님이 평생을 어떻게 살아오셨는지, 특히 그 분들의 어린 시절은 어땠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새벽이 오는 줄도 몰랐답니다. 그런 다음 그 신부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부모님이랑 형제들이 모여 밤새도록 수다를 떠는데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 그리고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데 마음이 울컥하기도 했고, 때로는 마음이 짠하기도 하고. 그렇게 잠을 거의 못 잔 채 아침에 가족이 다 함께 감사 미사 드린 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어. 그 날 오후 미사 주례가 나였거든. 우리 본당 보좌 신부가 하겠다고 했지만, 내가 해야 하는 것은 해야 하잖아. 암튼 오전 기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미사 강론 준비를 하려고 했지. 그런데 출발 때부터 내 옆 자리에 앉으신 분이 어찌나 힘들게 하던지. 얼굴은 자세히 안 봐서 모르지만, 연세는 좀 있으신 분인데 기차 안에서 계속 통화를 하는 거야. 객실 안내 방송은 ‘공공예절을 지켜라’, ‘핸드폰 진동으로 하라’, ‘통화는 객실 밖으로 나가서 하라’ 등의 말을 하는데 도대체 이 분은 안하무인인거지. 나는 피곤해 죽을 지경임에도 강론을 좀 쓰려는데 계속 옆에서는 전화 벨소리가 울리고. 그 분이 전화를 받으면 어찌나 큰 목소리로 통화를 하는지. 잠잠해 지면 또 벨이 울리고 통화를 하고. 통화 내용도 ‘알아서 잘 찾아간다, 걱정마라. 내가 어린 아기가, 거기 못 찾게’, 뭐 그런 내용인데 했던 말 또 하고 또 하고. 정말 미치겠더라. 그래서 나는 화가 나서 머리를 움켜쥐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그 분에게 좀 화가 났다는 표시를 했어. 그런데도 그 분은 본채 만 채, 계속 큰 소리로 통화하고! 그리고는 통화가 끝나면 아무 일도 없는 듯이 눈 감고 계시다가 10분인가 20분 지나서 또 전화 오고. 결국 나는 강론 몇 줄 쓰다가 그만 포기했지. 그리고 그 분에게 한 마디 할까, 말까 그러다 나도 그만 잠이 들어 버렸고, 서울역까지 와버린 거지. 그 날 복음은 ‘서로 사랑 하여라’ 뭐 그런 내용인데, 마음속으로는 ‘사랑은 무슨! 이런 예의도 없는 할머니 때문에 짜증나 죽겠는데!’”

“그래서 어떻게 됐어?”

“어, 마침 종착역 방송이 나오고, 좀 잤다는 생각에 눈을 떴는데, 통로 건너편에 여자 아이가 엄마랑 같이 앉아 있는 거야. 그래서 꼬마에게 ‘안녕’ 하고 인사했더니, 그 꼬마가 대뜸 ‘아저씨는 우리 아빠 같아요. 코를 얼마나 고는지 너무 시끄러웠어요.’ 알고 보니 내가 잠든 동안 코를 심하게 골았던 거야. 그래서 주변 사람들 모두에게 불편을 준거지.”

보청기를 낀 할머니가 기차타고 딸네 집에 가는 여정은 못 봐주고, 자기 코고는 소리에 같은 객실 분들에게 불편을 준 것을 미안해하던 동창 신부.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감동 있게 들었고, 그 내용 자체가 그 날 강론 소재였는데. 하느님이 그토록 좋은 강론 소재를 손수 주셨는데, 기차 안에서 전전긍긍했다던 그 신부의 자기 성찰. 그날 우리는 좋은 강론은 일상 안에서 좋은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데서 나온다는 것을 이구동성으로 나누었던 저녁이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