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96) 불편한 진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7-28 수정일 2015-07-28 발행일 2015-08-02 제 2955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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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회 L형제가 몇 년 전 사제서품식 때 있었던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나에게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어찌나 웃었는지! 그 형제에게 허락을 받고 사건의 전말을 실어봅니다.

사건은 사제서품식이 있던 날로 돌아갑니다. 그 형제는 서품식에 복사를 맡았는데, 오전에 서품 예절 복사 연습을 끝낸 후, 형제들과 함께 맞춤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었답니다. 원래 복사 연습은 서품식 전날에 끝냈는데, 당일 날 전체 연습 때 피정 마치고 온 서품 대상자들과 함께 총연습을 했답니다. 암튼 전례 준비가 깔끔하게 마무리가 되었고, 모두가 결전의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제 서품 전례 연습이 끝난 후, 전례 준비하는 형제들은 짧은 점심시간 동안 도시락을 먹은 후 형제들과 신나게 수다를 떨었답니다. 그러다 거의 서품식이 거행될 무렵, L형제는 자신이 화장실을 안 갔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품 예식이 거의 두 시간이 훨씬 넘으니, 얼른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에 예절 담당 수사님께 말씀을 드린 후 남자 화장실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화장실로 들어가려는 순간, 자신이 화장실을 잘못 찾은 듯, 화장실에는 온통 할머니들이 계시더랍니다. 순간, ‘아이쿠, 내가 잘못 찾았구나!’ 화들짝 놀라 다시 화장실 표시를 봤더니, 분명 남자 화장실 표시가 맞았습니다.

그리고 옆에 여자 화장실을 보니 거기에도 많은 여성분들이 줄지어 서 있었습니다. 아마도 서품식 시간이 다 되었고, 그러다보니 용감한(?) 할머니들이 기어코 남자 화장실을 점거해 버린 것입니다. L형제의 증언에 의하면, 남자 화장실을 쓰시는 할머니들은 문도 닫거나 잠그지 않아 눈을 어디다 둘지 차마 남자 화장실 안을 들어갈 수 없었답니다. 하지만 L형제 본인도 화장실이 좀 급한 관계로 인해, 조금은 큰 소리로 용기 있게 말했습니다.

“어르신들, 아니 여성 어르신들, 여기는 남자 화장실입니다. 여기는 남자 화장실입니다.”

하지만 할머니들은 그냥 웃기만 할 뿐, 아무 일 없는 듯 화장실 안에서 볼일을 본 분이 나오면 태연하게 다른 할머니가 들어가더랍니다. 그래서 그 형제는 더 큰 소리로 말했답니다.

“어르신들, 할머니, 아니, 할머니 자매님, 여기는 남자, 보세요, 남자 화장실입니다.”

그러자 그중에 볼일을 보려고 준비하던 할머니 한 분이, 그 수사님 팔을 잡더니,

“알아, 알아요. 그래도 우리가 다 하느님 안에서 같은 형제, 자매잖아요. 뭐 한 형제, 자매인데 뭐가 부끄럽겠어요.”

L형제는 속으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며, 차마 그 할머니들 앞에서 수도복을 올리고 소변을 볼 수 없더랍니다. 그래서 시간은 다 되었고, 할 수 없이 그 형제는 제의방으로 갔고, 시간이 되어 성대한 서품식이 거행되었습니다. L형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람이 소변을 참다가 죽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리고 서품식이 끝난 후, L형제는 거의 기어서 성당 사제관에 있는 손님방에서 볼일을 본 후, 그냥 몇 분 동안 넋 놓고 있었답니다.

하느님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한 형제요 자매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분명한 한계가 있는 관계를 형제·자매 관계로 과도하게 강요하면 오히려 심한 불편함을 줄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하느님 안에서 한 형제, 자매라 말하기에 앞서 그 관계가 일상 안에서 자연스러운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