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00) 지나친 배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9-01 수정일 2015-09-01 발행일 2015-09-06 제 2960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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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내가 사는 수도원에서 젊은 형제들이 모여서 1박2일 동안 중요한 회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저녁에 함께 식사를 하는데, 방이 모자라 한 방에 형제들 세 명이 함께 자는 경우가 생긴 모양입니다. 그래서 나는 행사 진행 수사님에게 내 방에서도 형제 한 명이 같이 자도 되니까, 회의 끝나고 내 방으로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 날 회의는 늦게 끝났고, 젊은 형제들이 야식을 먹는다며, 시간 되시면 식당에서 같이 음식을 나누자고 해서 식당에 갔더니 조촐하게 음식을 준비한 후에 가볍게 맥주 한 잔씩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열심히 사는 형제들이 마냥 좋았습니다.

야식이 끝나고, 내 방에서 함께 잠을 잘 형제랑 나는 내 방으로 와서, ‘침대와 바닥이 있는데 어디서 자겠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후배 형제는 당연한 듯, ‘바닥에서 자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마음속으로 내가 어렵구나 싶어, 나는 그 형제에게 그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먼저 씻은 후 침대에 누웠고, 그 형제는 방바닥에 이불을 펴서 잠 잘 준비를 했습니다. 순수하고 착한 형제라, 조심조심하는 모습이 역력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안 되겠다 싶어, 대수롭지 않은 듯 자연스러운 듯 잠이 든 척했습니다.

그러자 그 형제도 씻고 잘 준비를 하면서 조용히 세면장으로 갔습니다. 혼자 잠자는 것이 익숙해진 나는 잘 때 누군가 같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 형제가 들어와서 잠이 들면, 편안하게 잠자야지 하는 생각에 머릿속으로 ‘이 방에 아무도 없다, 나 혼자다, 조용히 잔다. 잠이 든다, 잠이 든다, 양 100마리, 양 99마리, 양 98마리’ 그러나 씻으러 간 형제는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한 시간 정도가 흘렀습니다.

양 100마리를 거꾸로, 또 거꾸로 세고 있는데, 후배 형제가 조심히 문을 열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게 들어오더니, 이불을 덮고 자려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그 형제도 내가 어려워서 그랬는지, 이리 뒤척 저리 뒤척! 그러기를 한 시간의 시간이 흘렀는데, 순간 ‘아뿔싸!’ 내 몸에서 이상한 반응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소변이 마려웠던 것입니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야식 때 마신 맥주 한 캔이 이제야 반응이 오다니!’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속으로 ‘지금 일어나면 안 되는데! 저 형제가 깨는데!’

그러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도저히 소변을 못 참겠다 싶어 급했지만, 어두운 방 안에서 조용히, 천천히 일어나려다가 그만 침대에서 ‘쿵!’ 하고 미끄러졌습니다. 그러자 후배 형제가 마치 본능적으로 불을 켜는데 방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쓰러진 나의 오묘한 자세를 보더니,

“강 신부님, 괜찮으셔요? 어디 아프신가요?”

“아, 아, 아니! 화장실 가서 소변 좀 보려고!”

창피하고 부끄럽고! 이렇게 함께 자는 것이 어려울 줄 알았으면, 자기 전에 둘이서 어떻게 사는지 대화라도 좀 나누다가 잠잘 걸! 잘 재우고 싶은 마음에, 서로가 서로를 너무 배려하다가, 오히려 불편함만 주었습니다.

배려는 조심스러운 행동에서도 나오지만, 진짜 배려는 좋은 대화와 좋은 관계를 통해서 함께 있는 공간 안에서 편안함이 느껴지는 데서 나오는 듯합니다. 너무 배려하고 싶다면 화장실을 반드시 먼저 다녀오던지, 아니면 좋은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의 긴장을 풀든지 아마,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