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01) 몇 칼로리예요?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5-09-08 수정일 2015-09-08 발행일 2015-09-13 제 2961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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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존경하는 교수님이 계십니다. 그 교수님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분들에게도 존경받는 분입니다. 나의 동창 신부들은 교수님을 뵐 때마다 교회 안에 훌륭한 어르신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합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연세가 있으셔서 지병을 몇 가지를 갖고 계신데 그중에 하나가 당뇨입니다. 30년을 당뇨와 투병중이신데, 무척 즐겁게 투병을 하십니다.

기본적인 운동이나 식생활 조절은 꼼꼼하게 챙기시며, 어디 출장을 가시더라도 당 체크를 꼭 하십니다. 가끔 교수님을 모시고 출장을 가면, 그 다음 날 아침에 교수님은 내가 묵고 있는 방에 친히 오셔서 ‘강 신부님, 피 좀 주세요’라고 하십니다. 이어서 교수님은 주삿바늘로 내 손가락을 찔러 흐르는 피 한 방울로 당 체크를 해 주십니다.

교수님은 평소 하루 드시는 음식량도 정확하게 조절하십니다. 하루 평균 드실 양을 계산해 놓으신 후, 매 끼니마다 거의 정확하게 칼로리를 따져가면서 드십니다. 그런데 교수님은 주변 사람들이 다 들리는 혼잣말로, ‘이것은 몇 칼로리’, ‘저것은 몇 칼로리’ 하시면서 계산을 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옆에서 교수님께 ‘에이, 그거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까불거리면, 교수님은 정확하게 칼로리 계산을 해 내십니다. 그러면 나는 호기심에 음식물 포장 면에 적혀있는 칼로리를 확인해 보면, 정확히 그 칼로리가 나옵니다.

그러던 어느 토요일 날, 교수님과 함께 하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그 날 오후에 회의를 마치고, 간식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도 어김없이 간식을 보며 ‘이것은 몇 칼로리’, ‘저것은 몇 칼로리’라고 말씀하시며 음식을 드셨습니다. 그 날 간식 중에 작은 컵라면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칼로리를 계산하시다가, 워낙 드시지 않으셨던 컵라면이라 예상과 실제 칼로리가 좀 차이가 났습니다. 우리는 간식으로 컵라면을 먹은 후, 시간이 되어 미사에 들어가려는데, 어떤 연구자 한 분이 대뜸 교수님에게 물었습니다.

“교수님, 그러면 오늘 저녁 미사에서 드시는 성체는 몇 칼로리예요?”

영세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그분의 질문을 듣는데 나는 오묘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체가 몇 칼로리라! 어쩌면 그 연구자는 평소 교리 시간에 주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것의 중요성을 들었고, 생명의 빵에 대한 교리 내용은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첫영성체 때 주님의 몸을, 생명의 빵을 받아 모셨지만 흰색의 동그란 성체에서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아 말 못할 궁금증으로 남았던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 질문을 받은 교수님의 대답은 명언이었습니다.

“성체는 ‘영 칼로리’예요.”

순간 ‘쏴’하는 침묵이 흘렀고, 잠시 후 다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으로도 ‘그래, 맞다, 성체는 0 칼로리이자, 영혼을 살리는 영(성령) 칼로리지!’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입니다.

사제에 의해 축성되는 제병을 실제로 눈에 보이는 주님의 몸과 풍성한 빵으로 생각했던 젊은 연구자의 생생한 질문.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받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성체는 ‘0’ 칼로리, 혹은 영(성령) 칼로리’라고 답변하신 교수님의 모습. 또한 옆에 서있으면서 그냥 혀만 내둘렀던 나! 많은 묵상을 하게 하는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저녁에 교수님과 연구자분들이 특전 미사에 들어오셔서 함께 미사를 봉헌하는데, 내가 거양 성체를 하는 것을 멀리서 뚫어지게 바라보시던 그분들의 눈에서 나오는 광선 같은 기운! 그러다 보니, 그 날 사제의 축성된 ‘살과 빵’에 의미를 너무 두다가, 그만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말았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