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29) 생명을 살리는 순명 (2)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4-05 수정일 2016-04-05 발행일 2016-04-10 제 2989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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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이상 기침하는 본당 신부님 모습을 보고, 그 본당 신자들이 작정을 한 듯 신부님을 납치해서 병원으로 데려갔는데, 검사 결과 ‘폐렴’이라는 진단이 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신부님은 ‘폐렴’이 얼마나 무서운 질병인지 몰랐습니다. ‘폐렴’은 단지 기침이 좀 심하면 나오는 증상으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신부님은 의사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일주일 정도 약을 먹으면 되나요?”

“아뇨, 지금 당장 입원 하셔야 합니다.”

“입원요?”

입원을 해야 한다는 의사 선생님의 말에 한숨부터 나왔답니다. 순간,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과 중요한 일정들, 그리고 본인이 없는 동안 다른 신부님에게 미사를 부탁해야 하고, 몇 가지 회의도 있고! 입원하게 되면, 그런 일들을 한꺼번에 정리해야 할 것을 생각하니 머리가 너무나 복잡하더랍니다. 그렇게 머뭇머뭇 입원을 망설이고 있는데 함께 병원에 간 신자 분들이 또 다시 말했습니다. 

“신부님, 서품 받을 때 약속하셨잖아요. 하느님 뜻 안에 살겠다고. 그리고 신부님은 우리 본당 신자들의 영적인 생명줄입니다. 신부님이 아프시면 저희들도 아파요. 신부님, 하느님 뜻에, 저희들의 간절한 기도에 순명하셔요.”

그 신부님은 할 수 없이 입원 수속을 밟았고,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고 누워있었답니다. 그리고 입원하기 전에는 모든 일정이 복잡하게 꼬일 것 같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일정은 그냥 잘 정리가 되더랍니다. 본당 미사는 인근에서 특수 사목을 하는 동창 신부님들이 대신 해주었고, 그 신부님이 입원 소식이 전해지자 자연히 모든 일정들은 연기가 되더랍니다. 본당 사무실에서도 신부님 없는 자리를 다 매워주었고, 동창 신부님들의 증언에 따르면 매일 미사 때 마다 여러 분의 신자들이 본당 신부님의 영·육간 건강을 위해서 미사를 올리더랍니다.

병원에 입원한 신부님은 자신이 왜 그렇게 몸을 사리지 않고 일을 했는지를 생각해 보았답니다. 그래서 묵상 중에 찾아 낸 것은 자신이 처음으로 본당에 부임했을 때, 그 본당에는 원래 본당 토박이 신자들과 새로 입주하게 된 아파트에서 여러 신자들이 전입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토박이 신자들과 전입한 신자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물과 기름을 보는 듯 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런데 5차례 본당 지하실의 관이 터지면서, 본당 신부님이 그것 때문에 힘들어한다는 말을 듣고 많은 신자들이 자발적으로 달려 온 것입니다. 그리고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신자들이 하루 종일 다림질을 하고, 헤어 드라이기로 책과 물건들을 말리면서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몇 날, 며칠을 같이 작업을 하다 보니,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마음을 알게 되었고, 결국 본당 지하실 관이 터진 사건이 신자들 모두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는 전화위복의 과정이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모습을 보면서 그 신부님은 너무나도 신나고 기뻤던 것입니다.

그리고 병문안 온 다른 동창 신부님들을 통해 ‘폐렴’의 무서움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최근 몇몇 신부님들이 선종하셨는데, 병명이 폐렴이었다는 말을 전해주었답니다. 그러자 깜짝 놀란 그 신부님은 ‘폐렴이 그렇게 무섭냐?’는 무식한 질문에 동창 신부님에게 욕만 먹었답니다. 사람들 대부분이 마지막에는 ‘폐렴’으로 죽음을 맞이한다는 말에 그만 기가 질려버린 것입니다.

열흘 이상 입원한 그 신부님은 퇴원해서 지금은 잘 살고 있습니다. ‘폐렴’을 감기로 알고 있던 그 신부님은 ‘죽다 살아났다’는 생각에, 서서히 자신의 몸을 돌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지금도 말합니다. 본당 신자분들 말에 순명을 잘했더니 지금 이렇게 살아 있다고! 순명은 때론, 생명을 살리기도 하는 모양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