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344) 산에서 내려온 한치 (하)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6-07-19 수정일 2016-07-20 발행일 2016-07-24 제 3004호 17면
스크랩아이콘
인쇄아이콘
 
            

동창 신부님들과 함께 휴가를 보내는 중에 비바람이 부는 날, 비양도에 들어간 날! 때마침 비양도 선착장에서 어부들이 살아 있는 한치를 잡아 온 것을 알고, 날름 그분들이 잡은 한치를 통째로 다 사버린 나! 서서히 비구름이 몰려오지만, ‘뭐, 별일 없겠지!’ 싶어 한 손에는 우산을, 다른 한 손에는 한치 3kg을 들고 비양도 산책의 절정인 비양봉을 오른 나!

때마침 비양봉 근처에서 쏟아지는 폭우와 심한 바람에 동창 신부님들은 뒤도 안 돌아보고 서둘러 내려가고, 나는 한치가 담긴 봉지를 움켜쥐면서, 비바람과 싸우다가 그만 우산마저 부러지고, 비는 쫄딱 맞고! 설상가상으로 들고 있던 하얀 비닐봉지 속의 한치들은 봉지 안에서 ‘살려달라’고 먹물을 쏟아내는데, 때마침 비닐에 구멍마저 생겨 먹물 또한 줄줄 흘러내리고!

비양봉에서 내려오는 동안 비를 너무 맞아 몸은 으슬으슬 추워지고, 하산해서 가까스로 배 선착장 대기실로 갔더니 그곳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때다’ 싶어 옷을 다 벗어 손으로 짰더니 물이 줄줄줄! 암튼 온몸으로 ‘한치’를 지키느라 고생 고생을 하면서 비양도에서 나오는 12시 배를 가까스로 타고 다시 한림항에 도착한 후,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 그 동네 목욕탕에 가서 몸을 담근 후, 다시 숙소에서 다 같이 한숨 푹…, 잠을 잔 후, 저녁 즈음 그래도 내가 산 한치를 깔끔하게 손본 후, 한치 회식을 열었습니다.

비양도에서 내가 비를 쫄딱 맞았는지 어쨌는지, 뒤도 안 돌아보고 내려가던 동창 신부님! 오후에 꿀잠을 ‘푹’ 자고 일어나서, 다시 식욕들이 돋았는지 한치를 너무너무 맛있게 잘 먹는 것이었습니다. 마치 그동안 한 끼도 먹지 않은 사람처럼! 순간 혼자서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그, 내가 한치를 들고 비양봉으로 낑낑대면서 올라갈 때는 힘든데 좀 들어줄까 말 한마디 안 하던 이 웬수들이 왜 그리 먹기는 잘 먹는지!’ 그래도 우리는 작은 식탁에 서로 꼭 붙어 앉아, 저녁 시간 비 내리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한치를 정말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러면서 지혜롭지 못한 내 모습을 돌아보았습니다. 만약에 비양봉에 올라가기 전 아침 식사를 했던 그 식당에 가서 겸손하게 마음을 열고, 한치 봉지를 잠시 맡아 달라고 부탁을 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아니면 그날 주변에 사람들도 없어 비양봉 올라가는 입구 근처 펜스나 나무에 한치 봉지를 묶어 놓고 올라갔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 텐데! 하지만 굳이 내 손으로 내가 산 한치를 들고 비양봉 정상까지 갖고 올라가려 했던 내 모습, 그것 자체가 참 어리석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그, 나는 바보야, 바보.’

이런 내 모습을 잘 아는 동창 신부님들은 나의 부끄러운 마음을 잘 아는지,

“야, 석진아, 이 한치들은 비양봉까지 올라가서 그런지, 정말 맛있다. 이 한치가 비양봉 정상의 기운을 받아서 그런지 더 맛있고 부드러워.”

우리는 가끔 자신 스스로가 희생이나 봉사를 결심한 후에 그것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혼자 힘들어 합니다. 때로는 자신이 선택한 희생이나 봉사를 주변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자신을 달달 볶기도 합니다. 그러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화풀이 하다보면, 그들은 영문도 모르고 감정의 희생자가 됩니다. 그리고 괜히 심술이 나서 희생이나 봉사의 힘겨움을 토로하면서, 투덜투덜합니다.

‘이거, 나 혼자 잘 먹고 잘살자고 하는 것도 아닌데, 도와주지도 않고…’

좀 더 마음을 열고, 평소에 ‘편안한 마음’으로 세상을 보면, 모든 지혜가 사랑 안에서 열리는 것을! 희생과 봉사의 마음으로 온통 자기 생각에 갇히면, 자신의 삶도 갇히고, 그리고 동료들도 그렇게 미움 안에 가두나 봅니다. ‘편안한 마음’은 평소 가지는 삶의 태도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