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 - 우리 전통 선율로 하느님 찬미
노래는 우리 신앙선조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박해시대 신자들은 전통 선율로 하느님을 찬미하고 교리를 되새겼다. 그 대표적인 노래인 ‘천주가사’는 조선교회 초기부터 지어지기 시작했던 노랫말이다. 형식이 가사인 만큼 음악적 요소도 가미됐다.
또 교회의 전례가 신자들 사이에 자리 잡으면서 우리 전통음악이 교회 예식 안에 들어오기도 했다. 연도(煉禱)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래를 부르다 체포돼 순교한 이들도 있다. 1800년 복자 최창주(마르첼리노), 복자 이중배(마르티노), 복자 조용삼(베드로), 복자 원경도(요한) 등은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여주 양섬에 모여 부활삼종기도를 바치고 성가를 불렀는데, 이때 포졸들이 들이닥쳤고 이들은 순교하기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신앙을 지켰다.
■ 담배 - 교우촌 생계에 도움 주던 작물
19세기 전반, 담배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주요한 기호품이었다. 담배는 다른 작물에 비해 수익률이 높은 편이었기에 소규모의 화전을 일궈 생계를 꾸리던 교우촌의 신자들에게도 인기 품목이었다.
최양업 신부는 스승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교우촌의 삶을 설명하면서 “열심한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육신과 세속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담배와 조를 심으며 살아간다”고 밝혔다.
담배촌이라 불리던 안양 수리산 교우촌을 비롯해 전국의 많은 교우촌에서는 담배를 생산했다. 특히 경기 북부지역에는 1960년대까지도 ‘강림초’라는 말이 사용됐다. ‘강림초’는 교우촌 신자들이 성령 강림 대축일을 전후로 심은 담배를 부르는 말이었다. 이 담배는 품질이 우수해 시장에서 크게 환영받았고, 비신자들도 이 단어를 사용했다.
교우촌의 담배가 유명해진 것은 양날의 칼이 되기도 했다. 전주 진영의 포교들은 신리골 교우촌에서 담배농사를 하던 정문호(바르톨로메오) 성인을 붙잡기 위해 담배상인으로 위장했다. 성인은 이에 속아 잡혔지만, 형장에 끌려가면서도 “오늘 우리는 천국으로 과거보러 가는 날”이라면서 기뻐하며 순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