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

[캄보디아 난민촌 사목체험기] 1.

제병영 수사ㆍ예수회
입력일 2019-07-24 16:28:52 수정일 2019-07-24 16:28:52 발행일 1990-11-11 제 1729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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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적 악의 희생자」통해 주님 체험
14만 난민대상 6개 센터운영, 오락ㆍ교육 등 프로그램 수행
자신의 한계 받아들이는 지혜 배워
예수회 제병영 수사는 1988년 3월~1990년 1월까지 캄보디아 난민촌에서 사도적 실습을 하고 영국에서 난민촌에서의 상황과 생활 등을 정리해 보내왔다. 이에 본보는 4회에 걸쳐 제병영 수사의 체험담을 연재한다.

<편집자註>

21개월 동안의(1983년 3월~1990년 1월) 나의 사도직 실습(예수회 양성과정에는 신학을 시작하기 전 사도직 실습을 한다)에 대한 반성과 느낌을 나누고자 한다. 캄보디아와 태국 국경지역에 위치한 2지구에서의 활동은 나의 인생에 크고 새로운 의미 등를 던져 주었음에 틀림이 없다. 제일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그들과 함께 하면서 나 자신이 주었던 것보다 받은 것이 더 많았다는 것이다.

먼저 개괄적인 설명부터 하고자 한다.

폴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지가 캄보디아를 지배하면서 백만명이 넘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국토를 황토화시킨 4년 뒤인 1979년 초베트남이 크메르 루지를 격퇴하기 위해 캄보디아를 침공할 때 수천명의 캄보디아인들이 식량과 보호와 의료혜택을 찾기위해 태국국경을 넘어 오기 시작했다.

캄보디아인이 태국국경을 넘어 오는 것이 차단된 이후, 국제적인 압력과 여론에 의해 마지못해 태국정부는 마침내 캄보디아인이 제3국으로 이주하기 위한 절차를 기다리는 동안 머물 수 있는 캠프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다.

국경지역에 있는 각 캠프는 캄보디아안에서 싸우는 게릴라 운동집단의 통제 하에 있었다.

2지구에는 약 14만명이 살고 있었으며 그 면적은 20평방킬로미터 정도인 아주 작은 직사각형의 들판이었다 이들의 50%가 15세 미만이며 그 중 고아들이 1천명 (0세부터 17세까지) 정도이며 한쪽 부모만 있는 아이들은 약 9천명에 달하고 있었다. 나는 이들을 위하여 일했으며 우리는 6개의 센터를 운영하였으며 그들을 위한 프로그램 등를 만들었다.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첫째, 사회봉사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고아들의 의ㆍ식ㆍ주 문제를 도와주는 일들이며 그들과 함께 사는 가족들을 도와주는 일들이다. 둘째, 오락프로그램이다. 이들의 여가 선용을 위한 것이며 전혀 오락시설이 없는 이곳에 그들의 젊음을 발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교육프로그램이다. 음악ㆍ미술ㆍ영어를 가르치는 것이다. 넷째, 각 센터에는 조그만 도서관과 오락실이 있어 그들의 여가 시간에는 언제나 이용할 수 있었다.

나는 이 프로그램을 위해서 80여명의 크메르 관리들과 일을 같이 했으며 주로 나의 임무는 프로그램의 계획들을 그들과 의논하고 그것을 결정하며 이것에 필요한 예산을 집행 관리하며 또한 물자를 주문하는 일이었다.

한 이방인으로서 그들과 함께 하면서 받은 개인적인 느낌과 반성을 글로써 표현한다는 것은 무척 어렵지만 나 자신과 나와 함께 했던 동료들을 위해서 아래에 정리하고자 한다. 나는 국경지역에 머물면서 느꼈던 것을 두가지로 나누어서 서술하고자 한다. 첫째로는 긍정적인 면이요 둘째로는 부정적인 면이다. 본질적으로 하나의 경험으로 엉켜있는 이 두면의 범위를 세 단어로 요약한다면 난민들과 함께 삶을 나눌 수 있었던 기간은 바로 기쁨과 어려움과 투쟁의 시간들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일을 시작할 때 솔직히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의미를 가졌었다.

거의 2년이 지나 캠프에서 송별회를 할 때 그들이 나에게 던져준 것이 엄청난 것이었기에 그들에게 한 첫마디의 말이『정말 대단히 감사합니다』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크메르인들을 인간존재로서 이해함과 동시에 나 자신이 수도자라는 것보다 오히려 한 인간존재로서 이해할 수 있는 심원한 기쁨을 느꼈다. 이 경험은 나에게 엄청난 것을 던져 주었다. 어떻게 나 자신의 한계를 솔직히 받아들일 수 있는지 배웠고 나 자신이 누구인지, 인생의 항로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 지를 알게 해주었다. 2지구에서 일하기전, 나는 이와 비슷한 경험이나 가난한자와 함께한 경험이 전혀 없었다. 그러나 지금, 과거의 결핍된 사고는 엄청난 경험들과 뭉그려지면서 기쁨으로 변한 것이다. 나는 수도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구름 속에 있던 나의 신앙은 진정으로 그분을 마음과 가슴으로 만날 수 있는 것으로 변하여 갔다. 그분께서는 내가 삶을 나누는 사람과 통해서 나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계신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특히 사도직 실습을 마무리 하는 단계에 이 경험들을 통해 그분의 사랑을 맛볼 수 있었으며 나의 한계점을 꾸밈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기쁨은 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과 생각과 가슴속에 심어 주었으며 그들에게 마음을 열수 있는 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동시에 그들 또한 우리들과 똑같은 역사적 선상에 서있는 인간이며 단지「구조적 악의 희생자」로서 고통과 가난을 아무런 선택의 여지없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특히 캠프의 상황이 나 자신의 과거의 삶을 반성하게 했고 얼마나 많은 순간 하잘것 없는 어려움과 장애물을 피하고 쉬운 길을 택해왔는지를 깨닫게했다.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삶의 투쟁을 그들의 것과 비교한다면 그것은 하나의 사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꼈다. <계속>

제병영 수사ㆍ예수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