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도자 / 이석자 마리크레첸스 수녀(예수성심전교수녀회·강동성심병원 원목)
“이 십자가를 부활의 마중물로 받아 들이게 하소서” “미사 중단된 현재에 낙담하기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 위해 기도할 때 대송·묵주기도 바치며 희망 가져야” 새벽 5시 45분 늘 그러하듯이 습성화된 나의 발은 어떠한 부딪힘도 없이 성당으로 향했습니다. 불꺼진 성당. 예수님이 계신 감실의 불빛이 너무도 처연하게 느껴지는 오늘, 재의 수요일. 재의 수요일에 미사가 없다니…. 감실을 바라보며 성가 58번을 읊조립니다. “암사슴이 시냇물을…하느님, 생명을 주시는 나의 하느님….” 환희와 찬미소리가 없는 적막한 성당. 가슴이 미어집니다. 수십 년 전 그날 머리가 어떻게 아프다고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 새벽미사를 3일 정도 못간 나는 죽어도 성당에서 죽는 것이 행복할 것 같다는 엄청난 교만(?)으로, 새벽 어둠을 가르며 다가서는 바람결이 너무 좋아서, 어린이처럼 신바람 난 나의 발은 새벽6시, 언제나 그러하듯 성당에 가 있었습니다. 3일이나 미사를 못 오다니 예비신자일 때부터 매일미사를 봉헌하기 시작한 이래, 내가 그렇게 아팠다는 말인가요? 기어가다시피 도착한 성당, 아무도 없습니다. 감실에 불도 꺼져 있는… 두려움. 가려진 십자가. 열려 있는 감실. 무서움에 떨고 있는 나의 귓가에 들린 성가 58번. 너무도 미세하게 들리는 노랫소리를 따라 내려가니 그 곳에 계신 예수님. 앞에 엎드려 몇 시간을 통곡해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작은 몸에 이토록 눈물이 많을 줄이야. 그날은 성삼일중 성금요일. 몸은 기진하였지만 정신은 너무도 맑아진 나, 그토록 아프던 머리가 이렇게 청명해질 수 있는지. 생명수, 아니 지혜의 정수가 온몸에 퍼져 산소 방울 터지는 청량감이 머리에서 발 끝까지 흘러 내렸습니다.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을,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기위해서 드리는 매일의 미사는 나의 생의 목적, 삶의 전부가 되어 있었습니다. 고통 중에 마주한 부활의 기쁨. 삶의 부활을 더욱 더 가까이 느끼고자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 미사가 없다니. 내가 잊고서, 몸이 아파서, 고통이 힘들어서가 아닌 어느 곳으로도 갈 수 없는 이 상황. “어찌하여 내가 낙심 하는가. 불안해하는가. 하느님을 기다리리라. 나를 구해주신 분 나의 하느님.” 나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며 살고 계신 모든 분들, 특히 병중에 계신 분들. 혹여나 감염이 될까봐 만나 뵐 수 없는 안타까움이 가득합니다. 코로나19로 힘겨워하는 우리 모두와 불철주야 애쓰시는 행정관계자 모든 분들, 우리들의 기억에서 잊어버리면 안 되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해 우직한 소처럼, 힘차게 뚜벅뚜벅 한걸음 한걸음 함께 기도하며 가는 우리였으면 좋겠습니다. 어디나 계신 우리 주님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오시는 주님께, 성당에 모여 함께 미사는 봉헌하지 못하지만 방송미사를 보며 감실 앞에 앉아 성체조배를 하고, 대송을 합니다. 또한 성모님과 함께 묵주기도를 봉헌하며 순간순간 화살기도로 어려운 이 시기를 잘 견뎌, 주어진 십자가를 부활의 마중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믿음을 키워 주십사 기도합니다. ‘실천하는 믿음’을 강조한 바오로 사도가 생각납니다. 실천이 없는 믿음이 아닌 실천하고 행동하는, 예수님의 작은 제자들이 되어 감실에 계신 예수님을 기쁘게 모실 그 날이 곧 오리라는 희망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힘차게 “하느님을, 나의 하느님을 찬양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