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쪽방촌 이웃과 함께’ 서울 단중독사목위 허근 신부
“봄이 되면 돋는 새순처럼 ‘나눔의 삶’으로 새로 나길”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움츠러들고 있지만, 다닥다닥 붙어 있는 1평 남짓한 집에서 생활하는 서울 후암동 쪽방촌 주민들의 문을 두드리는 사제가 있다. 서울대교구 단중독사목위원회 위원장 허근 신부다. 그는 불빛 없이 어둡고 다닥다닥 붙어 있는 쪽방 구석구석을 마치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드나든다. 해맑게 인사를 건네며 쪽방촌을 누비는 그의 뒷모습에서 그리스도의 향기가 난다.
허 신부는 단중독사목위원회가 운영하는 가톨릭사랑평화의집에서 6년째 쪽방 주민들을 만나고 있다. 그는 코로나19로 인해 종교 활동이 제한되면서 쪽방 주민들을 위한 도시락 배달에도 큰 어려움을 겪자, 우리 사회의 가난한 이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함을 호소했다.
“이럴 때일수록 감염에 취약한 환경에 놓인 가난한 사람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면서 그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 쉬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필요하죠. 우리가 물질적 나눔은 못하더라도 그들을 위해 기도로써 힘을 모아야 합니다.”
오랜 시간 쪽방 주민들 곁을 지켜오며 그 안에서 하느님을 느낀다고 고백하는 허 신부. 처음에는 조금 다르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이제는 하느님 안에서 같은 형제임을 느끼고 그들 안에도 하느님이 함께하시기를 기도한다.
허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님 말씀대로 가난한 사람들은 바로 우리 형제들이고 그들이야말로 ‘낙원으로 가는 여권’”이라며 “하느님을 직접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들과 함께하며 그 안에서 생명의 신비를 느낀다”고 말했다. 이어 “저의 일은 제가 믿는 하느님이 하시는 일”이라며 “하느님께서는 제가 그들 안에서 제 모습을 돌아보길 바라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개인주의와 이기심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더불어 사는 삶’과 ‘나눔’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대인들이 욕심에 눈이 멀어, 배가 부른데도 나눌 줄 모르고 계속 열매를 따 먹는 어리석음을 꼬집었다. 그는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모든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라셨다”며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은 하느님이 함께 더불어 살아가라고 주신 것”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미사가 중단된 이번 사순 시기는 그에게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기였다. 그는 “한 겨울을 지나 봄이 되면 새순이 돋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코로나19를 통해 속죄와 나눔의 중요성을 알려 주시려는 것 같다”면서 “우리 죄를 대신해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느님을 기억하며, 우리 주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부활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당연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은 사회가 됐습니다. 덕분에 그동안 신자들과 함께 봉헌하는 미사가 하느님께서 주시는 큰 은총이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하루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돼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길 기도하겠습니다.”
<성슬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