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 양극화는 “새로운 독재”… 함께 살려면 ‘경제민주주의’가 답이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56항> 현 경제, 이윤추구 보장하지만 불평등 경제 해결하기 어려워 자본가 항상 더 많은 소득 얻어 소득 불평등 커질 수밖에 없어 교회의 대안은 경제민주주의 모든 재화 보편적 목적 지녀 자본시장 구성원 균형 이루고 신뢰와 연대로 공동선 이뤄야
왜 부자와 가난한 이들 간 소득 격차는 점점 벌어지는가. 우리 사회에 뿌리내린 ‘불평등 경제’ 때문이다.
경제는 종교와 무관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교회 입장에서는 이 또한 하느님 백성의 삶의 문제다. 상위 1%를 제외한, 99%의 삶을 짓누르는 불평등 경제를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가톨릭교회의 관점에서 불평등 경제의 원인과 문제점을 짚어보고, 우리가 함께 추구해야 할 방향을 고민해본다. ■ 근현대 한국의 경제변화 한국은 박정희 정권 때 제조업 중심의 산업사회에 진입했다. 급속도의 경제성장을 이룬 한국은 1990년대를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서비스 중심의 탈산업사회로 산업구조가 바뀌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의 생산성 차이로, 탈산업사회는 산업사회에 비해 경제성장 속도가 느린 편이었다. 한국정부는 그 흐름을 과잉투자로 붙잡고 있다가 그만 외환위기를 맞게 됐다. 1997년 11월 21일 한국은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IMF는 긴축적 경제 운용(고금리)과 구조개혁을 한국정부에 요구했다.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1만 개 이상의 기업이 도산했다. 1998년 당시 경제성장률은 –5.5%였다. 그러나 전 국민의 노력으로 회복을 거듭한 한국은 2001년 8월 구제금융을 상환하며 ‘IMF 체제’를 졸업했다. ■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이제 한국경제의 체질은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바뀌었다. 신자유주의란 국가의 시장 개입을 비판하고, 시장의 기능과 민간의 자유로운 활동을 중시하는 경제체제다. ‘돈이 돈을 버는’ 구조로서 자본의 자유로운 이윤추구를 보장하지만, 한편으로는 불평등 경제의 원인으로 비판받고 있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대표 저서 「21세기 자본」(2014)에서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자본수익률이 경제성장률을, 자본소득이 노동소득을 압도하는 흐름이 지속 되면 극심한 부의 편중으로 이어진다”고 경고했다. 자본가는 일반 서민보다 항상 더 많은 소득을 얻기 때문에 빈부 간 소득 불평등은 계속 커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가톨릭교회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로 인한 불평등 경제를 우려한다. 상위 1%가 부의 대부분을 갖고, 99%는 가난한 양극화 현상이 계속되면, 정치·사회·문화 등 거의 모든 영역에서의 양극화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양극화를 “새로운 독재”(56항)라고 하면서, 양극화 심화로 공동선이 무너지고, 시장의 독재가 시작된다고 경고한다. 부산가톨릭신학원장 이동화 신부는 “모든 이들이 평등한 출발선에 서지 못하면, 부의 세습처럼 빈곤의 세습 역시 이뤄진다”며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불평등 경제는 오늘날의 민주주의를 퇴행시켜 예전의 계급사회로 복귀시키는 힘으로 작용한다”고 경고했다.■ 경쟁이 답일까?
코로나19 사태의 여파로 한국은 방역체계에 있어 전 세계로부터 “모범답안”이라며 칭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경제문제는 그렇지 못하다. 경기침체 피해는 대기업도 겪겠지만, 소상공인처럼 부의 기반이 튼튼하지 않은 이들에게는 직격탄이 아닐 수 없다. 소상공인과 관련해 최근 크게 대두된 문제가 바로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다. 도시 재생과 더불어 서울 곳곳의 구도심에 활기가 돌고 카페나 상점, 공연장이 들어오면서, 임대료 급상승 등의 문제로 원래 거주하던 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을 말한다. 대구 김광석길의 상가번영회 도길영(스테파노·대구 수성본당) 회장은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땅값과 집세가 올라가면서 건물주들은 보증금, 임대료 등을 천정부지로 올린다”면서 “코로나19는 사업 실패의 원인이 아니라,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드러나게 한 촉매제 역할”이라고 말했다. 도 회장은 현재의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쉽지 않겠지만, 희망은 분명 있다”고 말했다. 소상공인의 자구적 노력과 함께, 정부·지자체의 지원, 시민들의 관심이 반영돼야 한다는 것이 도 회장이 생각하는 대안이다. 결국 신뢰와 연대가 답이라는 의견이다. ■ 경제민주주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가톨릭교회는 ‘경제민주주의’라는 대안적 방향을 제시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은 ‘올바른 경제 발전’이 과도한 경제력을 가진 소수의 손에 맡겨져서는 안 되고, 인간에 대한 봉사가 돼야 한다(64·65항 참조)고 강조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도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서 이윤 추구를 배제하지는 않지만, 시민사회 안에서 이윤을 더 큰 사회적 목적을 위해 사용하는 윤리적인 기업활동을 지지하며, 이를 ‘시민경제’ 또는 ‘친교의 경제’라고 칭하고 있다.(46항 참조) 그리고 이러한 경제가 경제민주주의의 내용이라고 말한다. 이동화 신부는 “자본주의적 시장 경제 안에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사용자, 노동자, 소비자, 지역주민 등)이 균형을 이루고 그들의 공동결정이 존중되는 방향으로 경제체제가 운용돼야 한다”며 “시장 바깥에서의 경제, 즉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윤리적 투자 등의 이른바 제3부문의 경제가 확대되고 강화돼야 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고, 우리 사회의 공동선을 증진시키는데 이바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우세민 기자 semin@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