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이를 사랑했던 순교 사제의 꿈 잇습니다 북한군 총에 맞아 선종한 이현종 신부 기리는 사업 형편 어려운 신자 청소년들 본당 신자 후원금으로 도와
서울 도림동성당(주임 최희수 신부) 입구에 들어서면 이현종 신부 동상이 인자로운 모습으로 신자들을 맞는다. 전쟁으로 혼란스럽던 1950년 7월 3일, 성당에 들이닥친 북한군의 총에 맞은 이현종 신부는 “당신들이 내 육신은 죽일 수 있어도 영혼은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오”라는 말을 남기고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이 신부가 세상을 떠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도림동본당 신자들은 그를 기억하기 위해 기념관을 짓고 기념사업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이 신부의 순교 정신과 신앙의 모범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고 신자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채우고 있었다. 기념사업 중 지금까지 꾸준히 유지되고 있는 것이 바로 이현종 야고보 장학회다. 순교 당시 스물여덟에 불과했던 이현종 신부는 본당의 청소년과 청년들에 대한 사랑이 지극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신자들은 이 신부를 추모하고, 그의 뜻을 따르기 위해 ‘7·3회’를 1989년 자발적으로 만들었다. 지금은 개발과 함께 경제적 수준이 높아졌지만, 1980년대 당시 도림동 주변은 생활이 어려운 이들이 적지 않았다. 본당 신자들 중에도 기성회비를 내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7·3회는 장학사업을 추진하게 됐다. 그렇게 1989년 발족한 이현종 야고보 장학회는 1년간 신자들의 후원금을 모아 1990년 첫 장학생을 선발했다. 첫 해에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을 대상으로 4명을 선발해 1년 등록금을 지급했다. 본당 주임 최희수 신부는 “1989년 당시 도림동성당 주변에는 어렵게 생활하시는 분들이 많았고, 특히 경제적인 이유로 기본적인 학교 교육조차 받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았다”며 “당시 7·3회는 이현종 신부님 기념사업을 추진하면서 현양사업의 일환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청소년들을 돕기 위한 장학사업을 계획했다”고 설명했다.민경화 기자 mkh@catime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