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한국 교회사 연구소 최석우 신부(삼각지 주임)의 소장도서에서 이조시대 전국 읍지(邑誌)를 종합 정리한 여지도서(輿地圖書)55책 전질이 22일 발견됐다. 전국 8주(週) 2백96읍(邑)에 관한 인문ㆍ사회ㆍ군사ㆍ지리 등의 자세한 현황을 종합 수록한 이 여지도서는 1760년(영조36년) 필사본(筆寫本)으로 관(官)에서 편찬한 것이다.
이 도서는 표지를 빼고 모두 3천5백16장으로 엮어져 있고, 각 읍(邑)의 산과 강역ㆍ고을 이름ㆍ성지ㆍ망루 등을 표시한 채색지도 3백13장이 삽입돼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각 왕조때마다 발간된 읍지가 있었으나 한 시대를 정점으로 하여 전국을 정리한 것으로는 이것이 유일한 자료로, 한국사 연구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사학가들은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요한 史料를 소장했던 최석우 신부는 그 획득 연대를 1892년대로 보고있는데 한국 순교사자료를 집중적으로 수집했던 당시 조선교구장 민주교가 우연히 「서지학」을 편찬했던 불란서 학자 마리스 꾸랑과 친교관계를 맺으면서 사들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밖에도 소장하고 있는 3천여 권의 장서 중에는 이조시대의 법전ㆍ의서ㆍ읍지와 삼국사기ㆍ동경잡기ㆍ꾸랑의 싸인까지 있는 서지학 3권 등 중요한 국사자료가 비치돼 있는데 이것은 외국선교사들이 우리나라 실정을 파악하기 위해 간직했던 것으로 보고있다.
특히 한문에 능숙했던 민 주교는 병인년 이후 순교자 전기 수집에 몰두, 전국적으로 사료수집 운동을 벌렸을 뿐 아니라 자신의 저서병인 치명기 엽서ㆍ편지ㆍ사건기록 등 상세하게 그때 상황을 기록한 문서들을 간직, 최 신부는 지난해 8월 명동 주교관 창고에서 그의 서문간과 서류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교회사 연구소에 소장된 사료들은 민 주교를 비롯한 역대 「빠리」외방 전교회 주교들이 순교복자 시복 자료를 수집했던 것들로 1862년 안 주교댁 화재로 한글ㆍ한문ㆍ교회 사료들이 모두 소실됐고 그 후 「빠리」외방 전교회 주교들이 방치해둔채 귀국, 6ㆍ25 동란을 겪은 후 아무런 보관없이 주교관과 용산 성심여고에 산재해 있었다.
이런 상태에 굴러다니고 있는 사료들을 고(故) 한 대주교가 가톨릭 신학대학장으로 있을 때 서독에 있던 최석우 신부에게 연락 최 신부는 61년 귀국하자마자 신학대학 교수로 부임하면서 한국 교회사 연구에 착수 자료들을 보관해왔다.
한국 교회사 연구소가 창립된 것은 1962년 「빠리」외방 전교회가 신학교 설립 1백주년 기념사업으로 신문회관서 최초의 한국 교회사 자료 전시회를 개최하면서였다.
사실상 여지도서는 오래전부터 장서 중에서 최 신부가 발견 몇몇 학자들이 검토했으나 거의가 읍지에 대해 자세히 몰랐기 때문에 2ㆍ3년 그대로 방치해 뒀다가 지난 22일 우연히 각계의 대조와 검토를 거쳐 중요한 사료로 판명됐다.
한국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국사연구에 전환점을 가져올 이 도서의 발견은 현재까지의 중앙집권 중심의 국사연구 자세를 탈피 이조때까지 강력한 지방자치제가 실시됐음을 감안하여 지방자치 중심의 역사 연구가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이 여지도 발견은 한국 교회사 연구의 중요성 및 사료수집에 관심을 환기시켜 그나마 간직하고 있는 장서들의 관리 및 연구 보존이 시급함을 일깨우는 계기가 되길 교회 사학자들은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