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2주일·평신도 주일 제1독서 (지혜 6,12-16) 제2독서 (1테살 4,13-18) 복음 (마태 25,1-13) 삶은 악(惡)과 힘들고 끊이지 않는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아 믿음으로 주님 사랑에 복종하고 단련하면 승리할 수 있어 성경은 하느님이 마련해주신 놀이터, 말씀 속에서 기쁨 찾아야
이런 세상을 살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고작 미물에 불과한 바이러스의 공격으로 그 동안 쌓아 온 인간의 규범이 망가진 기분입니다. 하찮은 바이러스에게 바깥 생활을 차단당하고 보니 긴 세월동안 축적했던 인간의 사회론이 묵살당한 기분도 듭니다. 함께 어울려 형성하던 우리의 갖은 행위들이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로 둔갑했고 더불어 누리던 행복과 기쁨을 반납당한 이즈음, 이 낯선 공간에서 어찌 지내시는지요?
삶은 악과의 끊이지 않는 전쟁입니다. 하느님을 향해서 깨어 살아가는 것은 악과의 힘든 투쟁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악을 해명하지 않으십니다. 악을 설명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으십니다. 악한 세력을 없애지도 않으십니다. 다만 당신처럼 악과 싸울 수 있는 힘을 아버지께 청하라 하십니다. 그렇게 하늘의 힘으로 악에 맞서서 승리하라 하십니다. 악에 대한 승리는 악을 이해하거나 설명하는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믿음과 희망 안에서 생성되는 것임을 몸소 살아내라 하십니다.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복종”시키는 단호함을 챙기라하십니다. 부디 “다른 이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나서,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으려는”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라고 강권하십니다(1코린 9,27 참조). 그런 의미에서 더욱 오늘 독서 말씀이 심오하게 들립니다. “지혜는 바래지 않고 늘 빛이 나서 그를 사랑하는 이들은 쉽게 알아보고 그를 찾는 이들은 쉽게 발견할 수 있다”는 말씀에 따순 위로가 듬뿍 담겨있으니까요. 그리스도인의 지혜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는 것, 하느님의 사랑에 감격하는 예지라는 것, 오롯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을 사모하며 그분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니까요. 솔직히 바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던 우리입니다. 제발 한가하게 ‘멍’을 때릴 수 있는 여유를 우리는 갈망했던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고 보면 지금 이 시간도 충분히 은혜입니다. 은총의 때입니다. 이런 시간을 통해서 주님과 훨씬 더 친해질 수 있다면 말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 없습니다. 세상 끝 날까지 결코 그분을 알아낼 수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알지 못하기에 더 알아야 합니다. 알지 못하기에 더 알고 싶어 해야 옳습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에 성경을 통해서 오붓하게 그분과 깊게 교류하려 애쓰며 지냅니다. 그분과 조우하며 힘을 얻어야만 이겨낼 수 있는 사안이 산재해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그분께 아뢰며 봉헌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임을 수없이 체험했기 때문입니다.장재봉 신부 (부산교구 월평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