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노상 훈도(訓陶)에 목욕하는 『조찐야』(早眞也) 선생이 구렵 동경(東京=慶州-先生의 도가 노상 훈도(訓陶)에 목욕하는 『조찐야』(早眞也) 선생이 구렵 동경(東京=慶州-先生의 稻)에서 한양입성(漢陽入城)을 하셨다. 작반(作伴)도 명「컴비」인 노성악가 권태호 선생이셨다. 습속(習俗) 대로 우리는 주막을 찾았고 대음대성 방가방곡(放哭) 끝에 수인사도 없이 헤쳐졌다.
그 이틑날 취기미진(醉氣未盡)인채 호주머니에 담배를 뒤지니 꽁초마저 없는데 흰 종이쪽에 쓰여진 다음과 같은 글발이 튀어나왔다. 『천주님 당신의 친구 대접이 겨우 이 꼬라지란 말이 오니까! 그래서 당신에겐 친구가 그렇듯 적단 일이에요. 천주님!』 나는 두 세번 거듭 읽는 동안 그제서야 아슴프레 간밤 그 기주석(奇酒席)에서 『조찐야』선생으로부터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일화(逸話)를 들은 기억이 소생되었다. 저 봉쇄(封鎖)수도원 『갈멜회』의 개혁자(改革者) 데레사께서 늙은 당나귀수레에 앉아 순력(巡曆)을 떠나셨다. 시골두메 자갈길은 험했다. 터털거리며 가다가 개천을 건는다. 당나귀가 한발 미끄러트려 껑충뛰어오른다. 그바람에 당대절색(當代絶色)이요 이 거룩한 동녀(童女)는 공중접이가 되어 개천도랑 한복판에 나동구라진다 억망진창이 되어 일어나며 혼자 기껏 중얼대는 소리가 만고걸작(萬古傑作)이다. 천주님! 당신 친구 대접이 겨우 이 꼬라지란가. 이 뜨거운 신(神)과 그 섭리(攝理)의 확신 넘쳐 흐르는 사랑의 교담(交談)과 교권(交權)! 가슴이 찌리해 오는 무구(無垢)의 원정(怨情)! 그 성녀께서 그말이 있다고나 할까. 나와 더불은 수많은 현대인은 사욕편정(邪慾偏情)에 쌓여 생각이 천주에 미치면 우선 두렵고 답답하고 깜깜해지고 나아가서는 『슬프고 귀찮고』(르낭) 정말 어찌 이꼬라지란 말인가. 천주여! 우리를 구하소서.具常(筆者·詩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