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한담

[일요한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 함상혁 신부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
입력일 2022-01-18 수정일 2022-01-18 발행일 2022-01-23 제 3279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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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론을 준비하다 보면 이상하게 내용이 떠오르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이유가 두 가지입니다. 말씀의 뜻을 깨닫지 못했거나 아니면 말씀에 대한 체험이 없을 때입니다.

작년 11월 어느 주일의 강론을 준비하던 중이었습니다. 어떤 율법학자가 예수님께 다가와서 가장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인지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신명기의 말씀으로 대답하십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 말씀으로 강론을 준비해야 하는데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저는 체험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동안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서 하느님을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10년 전 일이 떠올랐습니다.

본당에서 대림특강을 하는데 성악을 전공한 교수님을 모시고 강의를 들었습니다. 강의만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체험도 들려주시고 중간중간 성가와 가곡도 곁들여 하는 특강이었습니다. 특강이 끝나고 집무실에 모여 교수님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옆에 있던 봉사자 한 분이 교수님께 참 열정적이라고 말씀드리자 “저는 지금까지 참 열심히 살고 열심히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교수님이 저에게 “신부님은 사랑을 해 보셨나요?”라고 묻는 것입니다. 저는 순간 침묵의 은사를 받았습니다. 다시 저에게 “죽을 만큼 사랑해보셨나요?”라고 물어보는데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에게 “신부님이 먼저 죽을 만큼 아픈 사랑을 해 보셔야 사목을 잘 하실텐데”라고 하시는데 할 말이 없었습니다.

목숨을 다해 사랑해 본 적이 없으니 하느님을 사랑하는 법도 몰랐던 것일까요? 언젠가 어떤 신자분이 저에게 “신부님, 좀 더 열정적으로 사목하시면 참 좋을 텐데 아쉽네요”라고 하신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그 말이 일을 좀 더 많이 하고 많은 활동을 하라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더 많이,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뜻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는데 잘 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올해 카타르 월드컵이 열립니다. 월드컵 초반에는 약체팀의 돌풍과 이변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전통의 강호들이 항상 우승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이런 강팀은 특징이 있습니다. 조별리그에서는 성적이 신통치 않은데 리그가 진행될수록 실력이 나옵니다. 왜 그런가 했더니 강팀들은 조별리그는 연습경기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차피 우승이 목표이니 힘을 비축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첫 몇 경기는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컨디션 조절차원에서 경기를 하는 것입니다.

저도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저는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만 내 힘을 쏟겠다고 미리 계산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사랑하긴 하겠지만 이 정도 선까지만, 내 에너지의 몇 %까지만 사용하겠다는 기준이 있었던 것입니다. 사랑하긴 하겠지만 이 이상은 안 된다고, 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정해놓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이 들었나봅니다. “신부로 사는 것이 크게 불행하진 않지만 아주 행복하지도 않다.”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저의 마음을 뜨겁게 해 주시도록 기도드립니다.

함상혁 프란치스코 신부 (수원교구 공도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