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어린시절, 어렴풋한 기억 속 가장 첫 번째 봉사활동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빈첸시오 활동을 하시는 아버지를 따라 노인복지회관이었는지 요양병원이었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곳에서 어르신들께 과일과 김을 나누어드렸고, 아버지 옆에서 나는 노래하고 춤을 추며 재롱을 피웠다. 바래진 사진처럼 희미한 그 기억 속의 나는 참 부끄러우면서도 행복했던 기분이다.
아버지는 항상 우리 세 자매에게 누누이 당부하셨다. “사람이 공부는 못해도 돼. 하지만 이웃과 무엇이든 나눌 수 있는 바른 인성을 가진 사람이 돼야 해.” 어린 시절, ‘당연한 말을 왜 이렇게 하시나’ 했던 아버지의 당부는 내 인생에 큰 양분이 됐다. 각박하고 정신없는 사회에서,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 살아가는 지금의 나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열아홉의 나이에 시작된 직장생활은 전쟁터였다. 같은 또래들끼리 모여 있는 부서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승진해야 하고, 더 좋은 고과평가를 받아야 했기에 주변보다는 오직 나만을 생각했고 자연스레 신앙과도 멀어졌다. 당연히 봉사라는 것 또한 내 삶에서는 사라져갔다.
집 바로 앞에 성당이 있음에도, 속세에 찌들어있는 나의 시선에는 그곳이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이기적인 모습으로 3년, 동료들에게 시기질투도 받고, 나 또한 시기질투를 하며 보내던 시간 앞에 갑자기 스스로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하느님 생각이 났다. 즐겁게 뛰놀고, 아버지 따라 봉사하던 어린 시절 꼬마의 신앙이 생각났다. 눈에 들어오지 않던 그 성당이 내 앞에 있었고, 곧장 미사를 드리러 갔다. 미사에서 신부님께서는 신자분들에게 선서를 시키셨다.
“주님, 제가 여기에 있지 않습니까?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십시오.”
왜인지 모르게 두근대는 가슴과 무엇인가에 홀린 듯한 기분으로 이날부터 나의 신앙과 봉사생활은 다시 시작됐다. 마치 봄날에 꽃비가 내리듯 어린 시절 느꼈던 그 행복보다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시작됐다.
그렇게 내가 체험했던 모든 시간들은, 봉사라는 것이 남을 위해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과 내가 공존하며 함께 사랑받고 사랑하는 시간이었음을 깨닫게 해줬다. 이웃에게 부족한 부분을 내가 채워주고, 내가 필요로 하는 부분을 그 이웃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 곧 사랑이 부족한 세상 속에서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 이것이 내가 느낀 봉사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여전히 세상의 것들이 나의 사랑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부진 마음으로 나의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오늘 또 한 번 다짐한다.
“내가 모든 재산을 나누어 주고 내 몸까지 자랑스레 넘겨준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1코린 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