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쓰고 새기며 신앙 깊이 달라졌어요”
붓으로 쓰는 ‘캘리그라피’와
칼로 돌에 새기는 ‘전각’으로
말씀과 묵상 이미지 형상화
“작업과정은 아픔과 기쁨이 늘 공존했다. 새김(刻)을 통해 마음의 상처를 덜어냈고, 먹과 물감으로 과거의 아픔을 덮었다. …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이 내게는 기쁨이었고 내 마음의 백신이며 치료제였다.”(제2회 개인전 ‘마라나타’ 작가노트 중)
유임봉(스테파노·57·서울 염리동본당)씨는 복음 속 그리스도의 모습과 말씀을 캘리그라피와 전각으로 표현하는 ‘새김 예술’(Engraving Art) 작가다. 붓을 도구 삼아 종이에 쓰고 칼을 도구로 돌에 새기는, 전혀 어우러질 것 같지 않은 상반된 기법은 지난한 과정을 요구하지만 작가의 묵상과 기도가 스민 작품은 보는 이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준다.
2019년 첫 개인전 ‘에파타’에서 그는 마르코복음 전체를 화선지에 캘리그라피로 필사하고 핵심 묵상단어를 새김해 찍은 가로 63㎝ 세로 190㎝ 작품을, 2021년 두 번째 개인전에서는 마태오복음을 두 장의 옻지에 먹물로 쓴 작품(가로 79㎝ 세로 150㎝)을 선보였다. 이 밖에도 그는 말씀을 쓰고 묵상하며 떠오르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새김 작품 300여 점을 선보였다.
유 작가는 “돌에 새기는 건 글씨를 쓰는 것보다 4~5배의 시간이 더 걸리지만, 덕분에 더욱 깊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게 된다”며 “마음 치유를 위해 시작한 캘리그라피와 새김으로 말씀의 깊이뿐 아니라 신앙의 깊이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깊이 체득하고 있다”고 전했다.
평범한 직장인이던 그가 캘리그라피를 시작한 것은 2017년. 마음의 병으로 힘겨워하던 때 ‘뭔가에 집중할 것’을 찾아보라는 상담을 받은 직후였다. 어린 시절부터 쓰고 그리는 것에 흥미를 느껴 온 그는 문구점에서 붓펜 하나를 사 집으로 돌아왔다.
“막상 ‘뭘 쓰지?’ 생각했을 때 책상 위에 놓인 포켓 성경이 눈에 들어왔어요. 자리에 앉아 A4지에 성경을 써 내려갔습니다.” SNS에 올린 그의 글씨와 문장에 많은 이가 응원과 격려를 보냈다. 본격적으로 캘리그라피를 배웠고, 자격증도 땄다. 작품의 낙관을 위해 수제도장을 파러 갔다가 신자가 아닌 전각가가 세례명을 ‘스데파노’로 새겨 넣은 것을 보고 전각도 직접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마침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미사 후 들른 갤러리1898에서 이세웅(베드로) 전각가의 작품을 만났고 무작정 인사동으로 찾아가 전각을 배웠다.
2019년과 2021년 두 번의 전시회는 쓰고 새김을 통해 마음의 병을 치유한 기쁨을 많은 이와 함께 나누고 싶어 마련한 자리였다. “2024년에는 루카복음을 소재로 전시회를 열 계획입니다. 요한복음은 아직 생각조차 못하고 있지만 4복음서 모두를 쓰고 새기는 것이 꿈입니다.”
벌써 7년 가까이 말씀을 곁에 두고 활동해 온 그는 성경을 필사하는 이들에게 ‘보고 되뇌이고 써 보시라’ 권했다. 1년이 걸리든 10년이 걸리든 되도록 말씀을 천천히 묵상하는 가운데 참 좋은 말씀, 신앙에 도움이 되는 말 그대로 ‘기쁜 소식’을 만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신구약 전체를 10번 넘게 필사하신 어르신들도 계신 데 거기에 비하면 저는 복음서 2개 그것도 캘리그라피로 쓴 거라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아요. 예술가이며 작가이기 전에 신앙인이라는 처음의 그 마음처럼 항상 기도하고 묵상하며 말씀을 새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