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교황 영향력 더 이상 예전과 같지 않아 그러나 세속적 관점과 달리 앞으로도 교황 역할은 중요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음 달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 참가한다. 교황청은 최근 교황이 12월 1~3일 두바이를 사목방문한다고 밝혔다. 교황이 COP 회의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COP는 1992년 유엔 환경개발회의에서 체결한 기후변화협약의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매년 개최하는 당사국들의 회의로 1995년 시작됐다.
교황은 환경을 보호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열정적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세계적 인물 중 하나다. 교황은 연설과 두 개의 문헌, 회칙 「찬미받으소서」와 권고 「하느님을 찬미하여라」를 통해 인류에게는 ‘공동의 집인 지구’를 보살펴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강조한다. 교황은 교회의 지도자로서 그리스도인의 관점에서 논거를 찾고 호소하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이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호소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교황이 가톨릭신자를 포함한 기후위기 부정론자와 환경파괴는 과장됐다고 믿는 이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성공했을까? 올해 12월이면 87세가 되고 대부분 시간을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교황이 거의 5000㎞를 날아가 COP28에서 각국 지도자들에게 연설한다는 것은 그가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한 이는 기후위기와 관련된 논의에 교황이 영향력을 주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교황 지지자들과 추종자들은 그가 실패했다는 데에 동의하지 않을 수 있다. 이들은 느리지만 교황이 시계를 돌리고 있는 인물 중 하나라고 믿고 있다. 교황의 두바이 사목방문은 또 다른 문제의 본질에 이르게 한다. 즉 기구로서의 교황이 세계적인 문제에 얼마만큼 영향력을 갖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교황을 지지하는 언론들이 보여주는 이미지에도 불구하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 무대에서 주요한 인물은 아니다. 물론 교황은 서구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절대군주로서 세계 지도자 중에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한때 교황은 세계에서 가장 큰 종교 종파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이는 오래된 이야기다. 이제는 무슬림 인구가 가장 많다. 이슬람교는 15년 전 가톨릭교회를 넘어서 가장 큰 종교가 됐고, 차이는 더 벌어지고 있다. 세속에서의 권력을 잃은 후에도, 교황과 교황청은 오랫동안 세상에 큰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을 보자. 교황은 매일같이 평화를 호소하고 있다. “전쟁을 종식할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으며, 이곳저곳에 자신의 특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은 적십자와 같은 NGO 역할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니카라과에서는 독재정부가 가톨릭 사제와 주교, 수도자들을 추방하고 투옥시키고 있지만, 남아메리카 출신인 교황은 교회에 대한 박해를 멈추거나 완화시키지 못하고 있다. 교황청 외교관들은 니카라과에서 어떤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줄줄이 이어진다. 교황에게는 일주일에 두 번 평화를 요청하고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기회가 있다. 매주일 정오 교황은 자신의 집무실 창문 앞에 서서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과 삼종기도를 한다. 교황은 당일 복음에 대한 묵상을 이야기하고 강복한다. 이어 평화를 호소하고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매주 수요일 일반알현 말미에서도 비슷한 일을 한다. 세계 무대를 흔들 수 있는 정치가와 시민사회 지도자, 국가의 수반들은 바티칸 시국의 수장인 교황을 알현하기 위해 줄을 선다. 몇몇은 교황의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들의 생각과 관점에 대한 교황과 교황청의 지지를 받기 위해 교황을 찾는다. 비록 교황에게는 과거와 같은 정치적 권력이나 영향력은 없지만, 그리스도의 대리자라는 가장 중요한 호칭이 있다. 세계의 지도자들에게는 교황의 축복을 받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다. 아마도 진짜 핵심은 여기에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시의 통치자와 지도자들에게 미쳤던 영향력은 당신의 ‘대리자’ 266명이 보여줬던 것보다 훨씬 적었다. 이런 의미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나 미래의 교황이 세계 정치 무대에서 경험할 수 있는 실패는 무언가 다른 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 아마도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며 죽음이 새로운 삶을 의미하는 복음에서 말하는 승리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