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독서 이사 40,1-5.9-11 / 제2독서 2베드 3,8-14 / 복음 마르 1,1-8 아기 예수님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 힘없고 가난한 이웃 위해 기도하며 가장 낮은 곳 돌보라는 주님 뜻 따라 사랑과 겸손 살아내는 신앙인 되길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음성은 다정합니다. 그리고 독서를 통해서 듣는 이사야 예언자의 외침이 마음을 흔듭니다. “보라, 주 하느님께서 권능을 떨치며 오신다.” 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하느님 아들은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영혼이 아린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배려일까요?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해마다 아기가 되어 우리를 찾아오십니다.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 2주일, 과연 우리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느끼며 무엇을 해야 할까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가 되어 인간의 모든 것을 스스로 익혀야 했던 하느님 아들의 미숙함을 봅니다. 예수님의 고민과 번민과 힘들었던 삶을 봅니다. 우리 삶에 굳게 박혀 있는 죄를 씻어주기 위해서, 말할 수 없이 극심한 고통을 당했던 모습도 봅니다. 오직 아버지를 향한 믿음과 세상을 향한 사랑만으로 갖은 문제와 부딪히면서 한없이 힘들고 슬펐을 예수님의 외로움을 마음에 담습니다. 수도 없이 사랑에 빈곤하여 사랑에 머뭇댔던 제 초라한 행색을 봅니다. 내내 피로에 절어 중증환자로 전락해버린 제 모습을 봅니다. 자신의 결핍에 마음이 쏠려,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살아내지 못한 우둔함을 봅니다. 기쁘게 살지 못한 모든 시간이 세상을 향한 하느님 사랑을 가리는 어둠의 가림막이었음을 고백하며 가슴을 칩니다. “첫 돌 지난 아들 말문 트일 때/ 입만 떼면 엄마, 엄마/ 아빠 보고 엄마, 길 보고도 엄마/ 산 보고 엄마, 들 보고 엄마 (중략) 구름 보고 엄마, 마을 보고 엄마, 엄마/ 아이를 키우는 것이 어찌 사람뿐이랴/ 저 너른 들판, 산 그리고 나무/ 패랭이풀, 돌, 모두가 아이를 키운다.” (김완하 ‘엄마’) 문득 당신의 아들을 힘센 장군이 아니라 연약한 아기로 세상에 보내신 하느님의 심정을 알 듯합니다. 온 세상 모든 이에게 당신의 아들 예수님이 사랑받기를 바라셨을 하느님의 심정이 느껴집니다. 모든 아기는 삶의 기적입니다. 작은 아기 몸에는 하느님의 전능하심이 가득합니다. 그러기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연약한 아기로 세상에 보내십니다. 아기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 힘없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진리이신 당신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려주십니다. 아들을 사제로 봉헌한 제 어머니는 사제가 된 아들을 존대하며 어른으로 대우하십니다. 그런 어머님이 몹시 낯설었는데 어느새 ‘그러려니’하는 세월이 쌓여 저는 어머니의 어른으로 살고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이 무조건 좋았다는 상주의 산골 아가씨는 아들을 낳으면 스테파노로 세례명을 지어주리라 다짐을 했다던가요? 덕분에 스테파노 신부가 된 아들은 이즈음, 엄마 품이 그립습니다. 이런저런 투정도 부리고 싶고, 쌓인 하소연을 풀며 후련해지고도 싶습니다. 하지만 사제 아들은 어른이라, 그러지를 못합니다. 제 아픔을 쉬쉬 숨깁니다. 행여 아들 소식에 어머니 마음이 다칠까 노심초사합니다. 제 기억 속에 어머니는 그저 덤덤하신 모습뿐입니다. 일평생 작은 일에 조급하지 않고 큰일에 허둥대지 않으며, 종가집의 갖은 희로애락에 자기감정을 드러내지 않으신 어머니였기에 살갑게 여긴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제, 티 내지 않고 바쳐주시는 어머니의 기도가 사제 아들의 버팀목임을 느낍니다. 새벽을 깨우고 밤을 지새우는 그 절절한 염려가 사제생활을 밝혀주는 등불임을 깨닫습니다. 힘이 들 때마다 우뚝 기운을 차리게 되던, 그 알 수 없는 응원의 뿌리가 연로하신 어머님의 질긴 그러나 따뜻하고 온화한 기도에 있었음에 감격합니다. 때문에 아직은, 아니 더 오래오래, 오직 저를 위해서 어머니의 기도가 필요하다는 이기적인 심보를 놓지 못합니다.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이제 작은 아기가 되어 우리에게 오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을 지극히 존대합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우리의 구원자이심에 감사드리며 갖은 찬미를 바칩니다. 하느님께서 작은 아기로 세상에 오신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기 예수님은 세상 곳곳, 낮고 춥고 어두운 곳에서 우리의 돌봄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영적 죽음’을 당한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하기를 기대하십니다. 세상에는 아직도 해서는 안 될 일을 가리지 못하는 ‘눈 먼’ 사람들이 넘쳐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삶을 되돌려 죽은 영을 깨우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아무것도 모른 채, 우리를 향해 ‘엄마’라고 옹알대는 예수님을 쓰담쓰담, 어여뻐하는 마음으로 선행을 하고, 아기 예수님을 보듬어 토닥토닥 재우는 심정으로 이웃을 위해서 봉사한다면, 아기 예수님은 정말로 신바람이 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시는 그분을 기다리는 설렘을 가는 곳마다, 만나는 이마다 전해봅시다. 이야말로 “몸을 굽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는 우리에게 당신의 아들을 맡겨주신 하느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대림 2주일의 복된 모습임을 명심합시다. 두 주일만 지나면 우리는 하느님께서 선물해주신 아기 예수님을 만납니다.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을 한껏 반겨주세요. 얼른 따순 품에 보듬어주세요. 그렇게 세상의 그늘진 곳에서 울고 있는 아기 예수님을 달래주세요. 부디부디, 사랑과 겸손의 절정을 살아내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돼주세요!장재봉 스테파노 신부,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