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가 끝날 때 나만의 조촐한 행사가 있다. 1학기가 끝날 때는 묵주를 사고, 2학기가 끝날 때는 다이어리를 산다. 반복되는 기도로 줄이 끊어진 묵주를 아쉽게 떠나보내고 새 묵주를 살 때는 해묵은 나를 보내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느낌이다. 매일 일기를 쓰는 나는 다이어리를 신중하게 고른다. 전례력도 있어야 하고 일정과 기도, 시와 느낌을 적을 수 있도록 지면도 넉넉해야 한다. 초록과 빨강 다이어리 중 뭘 고를까 고민하다 이 글을 쓴다.
다이어리엔 꼭 실천할 몇 가지 일을 적는다. 매일 한 시간씩 걷기, 하루 세 끼 식사 시간을 잘 지킬 것 등 비교적 단순한 일들이다. 거창한 계획보다 단순한 일상의 규칙을 지키는 게 때론 더 어렵다. 전례력으로 이미 새해가 되었으니 한동안 멈췄던 감사 일기를 다시 시작하는 요즘이다. 잊고 살면 감사할 일이 없지만, 새겨보면 하루에 수십 개가 쌓이는 게 감사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급하게 요리하다가 손을 데일 뻔 했다. 발갛게 부풀어 오르는 손을 찬물에 씻으며 ‘이만해서 감사합니다’ 했다.
학생 때도 늘 수첩에 메모를 했다. 수첩 맨 앞에 ‘감사하라’는 좌우명을 적어놓았는데, 어느 날 국어선생님이 내 책상을 지나시다 그 좌우명을 보시곤 “은귀, 교회에 다니나?” 물으셨다. “아니요” 하니, “아, 감사하라가 적혀 있어서 말야” 하셨다.
친·외가 할머니 두 분이 모두 절에 다니는 집안에서, 이해인 수녀님과 김남조 시인의 시를 즐겨 읽으며 자란 나는 중학교 때부터 성당에 다니고 싶었는데, 경주 시골 마을엔 성당이 없었다. 성인이 되어 ‘종교의 자유를 주세요, 저는 성당에 다닐래요’라고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영세를 받았다. 지금은 시어머니도, 부모님도 모두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기도에 함께하신다.
감사는 모든 일이 잘 될 때 드리는 기도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일이 잘 안 될 때, 힘들 때, 막막할 때 감사 기도를 드리면 눈이 환해지고 길이 열린다. 감사를 하다보면 또 감사할 일이 생긴다. 2023년 2월 13일 일기장엔 이렇게 적혀 있다.
1. 부모님께 감사. 엄마 아버지는 뭐든 스스로 하려 하신다. 허리 아프신 아버지는 옆에서 걸음을 도와드리려고 해도 괜찮다 하시고, 신발 신는 것도 스스로 하신다. 두 분의 독립성과 주체성이 지금껏 두 분 건강을 지탱하는 힘인 것 같다. 감사하다. 2. 아침 출근을 30분 당긴 남편, 꽁치김치찌개를 달게 먹는다. 감사하다. 3. 체한 후 힘들던 몸이 회복 중. 감사하다. 4. 손이 낫고 있다. 네 번째 병원에서 받은 약이 말을 듣는다. 의사 선생님도, 소개해준 선배 언니도 감사하다.
2022년 11월 17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1. 대림 1주, 다시 새해를 시작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 제자들 무사히 졸업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3. 부모님 건강, 감사합니다. 4 오늘도 시를 읽고 번역할 수 있어 감사합니다.
소소한 감사는 끝이 없다. 새해 감사 일기엔 어떤 일들이 적힐까. 아파도 감사, 넘어져도 감사, 제 마음 몰라주셔도 감사, 소리 내어 감사를 계속 말하다보면, 기쁨이 이어지겠지. 오늘은 다시 오지 않으니 오늘 만나는 모든 인연이, 신비가 감사하다고. 이 모든 걸 허락해주신 하느님 감사하다고. 또박또박 힘주어 써봐야지. 새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