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내 눈의 들보] 젊은이들이 없는 텅 빈 성당을 바라보며 - 젊은이들에게

박지순
입력일 2024-07-11 수정일 2024-07-16 발행일 2024-07-21 제 3402호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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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이 없는 텅 빈 성당을 바라볼 때면 여러 상념이 들곤 한다. 젊은이들을 성당으로 부르거나, 이탈하지 않게 하려는 많은 사목적 배려와 노력을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군종교구에서 훈련병, 특기병, 기간병, 간부와 군인 가족들을 대상으로 15년째 예비신자 교리교육 또는 교우 재교육을 해 오면서 느낀 소회를 바탕으로 몇 가지를 제언한다.

혹자는 요즘 청년들을 ‘파편화 개인주의, 실속과 향락만 찾는 세대’로 지칭하며 그들에게 ‘탈종교 현상’이 심각하다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가 활동하고 있는 군종교구 한밭성당 가까이에는 개신교 교회, 불교 법당이 나란히 붙어 있다. 훈련병의 경우, 주일 종교 시간에 개신교 교회에는 120명 넘게, 법당에는 80여 명이, 성당에는 20여 명이 참석한다. 15년 전, 필자가 군선교사 활동을 시작할 때와 비교해 보면, 개신교와 불교는 참석 인원에 큰 차이가 없는 반면, 성당 미사 참례 인원은 크게 감소했다.

왜 그럴까? 요즘 젊은이들은 기회균등과 불평등에 대한 사회질서의 변혁, 기후위기와 지속 가능한 미래 공동체, 공동선에도 관심이 많다. 엄연히 종교심을 잃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왜 성당에만 적게 나오는 것일까? 드물게 미사의 엄숙함과 경건함을 느껴 스스로 세례를 받겠다는 사례도 있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미사가 지루하고 불편하며 종교 의식행사일 뿐, 자신들의 삶과 무관하다고 느낀다. 미사 전례에서 함께 울고, 웃고, 기뻐하며 주님께 구원받는 체험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부활 신앙의 핵심은 날마다 모든 것이 ‘새로워짐’이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 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 저는 중심이 되려고 노심초사하다가 집착과 절차의 거미줄에 사로잡히고 마는 교회를 원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우리를 불안하게 하고 우리의 양심을 괴롭히는 무엇인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수많은 우리 형제자매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맺는 친교에서 위로와 빛을 받지 못하고 힘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복음의 기쁨」 49항)

프란치스코 교황이 10년 전 우리에게 던진 ‘새 포도주’다. 그런데 10년이 지난 오늘도, 우리는 여전히 기복적 자기중심, 자기만족을 위한 카페테리아 신앙, 주일이면 의무적으로 미사에 참례하는 시계추 신앙, 즉 ‘헌 부대’에 머물고 있다. ‘해오던 대로’의 신앙에서 벗어나 충만한 은총을 체험하지 못하고, 교회가 쇠락을 반전시켜 역동성을 회복하지 못한다면 응당, 새 포도주를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적잖은 청년들은 자신들이 항상 교회 뒷전에서 찬밥 신세이고, 교회가 자신들의 문제에 귀 기울여 들으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에 등을 돌린다고 말한다. 가르치고 요구하기보다 배우고 수용하는 자세, 길을 내어주고, 함께할 공간을 만드는 모습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청년들에게도 묻지 않을 수 없다. 먼저, 제언을 하지는 못하는가? 자신들의 공간을 요구하지는 못하는가? 해 보기는 한 것인가? 해 보고 안 되면, 그때 떠나도 되지 않을까? 교회의 주인으로서 역할을 스스로 찾아가는 젊은이들이 보고 싶다.

젊은이 여러분! 조금이라도 갖춘 뒤에 나눔도, 배려도, 희생도 하겠다고 생각하면 기회는 영원히 오지 않는다. 3%의 소금이 바닷물 전체를 짜게 하듯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교회 안에서 소금이 되라!

글 _ 백인기(요한 사도) 군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