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그렇듯 자주는 아니지만, 간절히 바라거나 뜻하는 바가 있을 때 나는 주님께 부탁하는 기도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이 해결되고 나면 여지없이 나의 기도는 곧 끝나게 된다. 참으로 단순하고 이기적인 나의 반복된 모습을 보면서 어린아이 같은 신앙이 마냥 부끄럽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날 나의 간절한 소망을 들어주신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에 잠깐씩이라도 매일의 기도를 지속하기로 기특한 결심을 했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의 짧은 묵주기도는 성모님의 도우심 속에 계속 이어져갔고, 어느덧 1년이 훌쩍 지나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 내심 우쭐한 마음까지 들게 됐다. 그러던 어느날 나는 우연히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
이게 웬일인가, 처음 시작하던 때의 진심 어린 기도는 더 이상 온데간데없이 그저 매일 해야만 하는 일이 되어 있었고, 일상의 지루함 속에서 그냥 해치우듯 기도를 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의무감은 나를 속박했고, 나도 모르게 그저 하루의 정해진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라는 듯 영혼 없는 반복된 절차가 되어버린 것이었다.
무엇이 나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왜 처음과 같은 진정함과 감사함은 사라진 것일까. 형식에 얽매여 본질을 잃어버리게 하는 바로 그 ‘율법주의’. 무의식 속에는 나도 모르는 오만함이 자리 잡았고, 그저 형식과 절차 수행에만 관심을 갖게 된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즉 기도를 위한 기도만이 있었던 것이다.
한때 신앙은 내게 단순한 의무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을 경험하고, 그분과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점차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일’로 여겨오며 기도와 미사, 봉사하는 일은 어느 순간부터 형식이 되어 있었다. 수단이어야 할 행위들이 마치 목적이 되어버린 듯.
이제 다시금 신앙을 새롭게 점검해 보려 한다. 하느님께 드리는 기도와 미사가 단순한 의무가 아닌, 내 영혼의 깊은 고백이 될 수 있도록. 그분과 진정으로 소통하는 시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다시 한번 멀어졌던 하느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려 한다. 하느님은 나에게 의무를 강요하신 것이 아니다. 형식과 규칙만이 아닌 하느님과의 살아있는 교감을 통해 그분을 사랑하고, 그 사랑을 세상에 전하기를 원하신다.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나의 모든 일상을 되돌아보며, 그 사랑을 세상에 나누며 살아가길 다짐해 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깨어있으면서 주님의 뜻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지 영혼의 촉을 세워야 할 것이다.
글 _ 장지원 마리아 막달레나(수원가톨릭오르가니스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