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61) 사과를 해야 할 때 ②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1-18 수정일 2014-11-18 발행일 2014-11-23 제 2920호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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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지금 당장
그러자 B 신부님은

“그 전 날까지 약속은 기억하고 있었어. 그런데 어제 아침에 갑자가 잊어버린 거야! 진짜라니까! 나이 때문인가.”

A 신부님은 웃으면서 말씀을 계속하셨습니다.

“암튼 아무것도 모르는 C 신부는 B 신부 사제관에 갔더니, 주방 자매님만 두 분이 계신거야. 그래서 어떻게 된 일인지를 알려고 C 신부는 B 신부에게 전화를 했지. 그러자 B 신부는 지금 외출 중이고, D 신부를 만나고 있으니, 그리로 오라고 한 거야. 순간, C 신부는 짜증이 난거지.”

이때 C 신부님은 짜증은 안 났다고 항변하셨습니다. 그러자 웃으며 A 신부님은,

“사실, 상황 설명도 없이 약속이 취소되면 짜증나잖아! 그래서 C 신부는 다른 볼 일이 있다고 핑계를 댄 후, 내가 있는 곳으로 온 거야. 때마침 나는 하는 일이 일찍 끝나서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었지. 그런데 헤어지기 전에 C 신부 얼굴이 좀 안 좋아. 그래서 무슨 일이 있느냐 물었더니, C 신부는 자초지종을 이야기를 하면서, B 신부가 자기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를 안 한 것이 속이 좀 상했다는 거야. 그래서 헤어진 후에 내가 B 신부에게 전화를 해서, 전후 사정을 확인을 해 보았더니, 상황이 다 맞아. 그래서 B 신부에게 물었지! ‘왜 사과하지 않았냐!’ 그러자 B 신부 자신도 C 신부 전화를 끊고 나서야 그게 생각이 난거지. 하지만 서로가 친하기도 하고, 뭐 그 정도는 다 이해하겠지 싶은 마음에 전화를 다시 못했다는 거야. 처음 전화 왔을 때 사과하지 못한 것이 그냥 사과할 기회를 놓쳐 버린 거지. 암튼 B 신부는 내 말을 듣고, 즉시 C 신부에게 전화를 했지, 사과하려고! 그랬더니 C 신부는 B 신부의 전화 한 통화에 마냥 좋아서 그냥 아무 일 없는 듯이,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다가 전화를 끊은 거야. 그리고 오늘 저녁에 이렇게 만난거지!”

그러면 이날 신부님들 모두가 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일상 안에서 사과를 할 일이 있다면 지금 당장, 마음을 먹고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심과 정성을 담은 마음으로 사과를 하면,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깊어져 행여나 오해로 번질 수 있는 것을 차단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특히, 가까울수록, 친밀할수록,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할수록, 사과할 때는 더욱더 진심과 정성을 담아야 함을 깨달았습니다. 사실 그 신부님들 역시, 신학교 때부터 아주 친했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몇 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다른 동창 신부님들보다 더 친밀하고 가깝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오히려 ‘사과하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가깝다고 생각할수록 그 가까운 사람에게 진심과 정성을 담은 사과를 하는 것! 일상 안에서 상대방이 누구든지 간에 작은 오해나 사소한 문제로 부딪힐 때 이내 곧 진심과 정성을 담은 사과를 하는 것! 이것은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지 않음의 시작이며, 동시에 서로의 관계를 깊이 있게 이끌어 주는 영적인 선물입니다. 진심과 정성으로 하는 사과는 곧 상대방에 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드러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지금 혹시 누군가에게 사과를 머뭇거리고 계신 분 있으신지요? 지금입니다. 지금이 사과할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사과할 수 있는,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은총의 순간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