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267) 어느 겨울날의 추억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입력일 2014-12-30 수정일 2014-12-30 발행일 2015-01-04 제 2926호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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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겨울날, 수도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대축일 미사 후 식사 때 ‘오르간 페달이 언제부터 나왔는지!’가 주제가 되었답니다.

그러자 한 분 수사님이 자신 있게,

“오르간 페달, 그거 생각해 봐! 오르간에 언제 나왔겠어. 18세기 이후에 등장했겠지!”

이에 식탁 맞은편에 앉은 다른 수사님이,

“아냐, 오르간 전통이 언제부터인데. 그 이전부터 오르간에 페달이 달렸지!”

그렇게 시작된 이야기는 ‘오르간 페달’ 논쟁이 되어, ‘18세기 이후에 나왔다’, ‘아니다, 그 이전에 나왔다’ 두 주장이 팽팽해졌답니다. 급기야 두 수사님은 내기까지 하게 됐답니다. ‘페달이 18세기 이후에 나왔다면 머리를 삭발하겠다’, ‘페달이 18세기 이전에 나왔으면 눈썹을 밀겠다!’

그런데 그 당시 ‘오르간 페달’ 논쟁은 18세기 이전에 나온 것으로 결론이 나서, 오르간 페달이 18세기 이후에 나왔다고 주장했던 수사님은 오전에 자신의 방에 가서 눈썹을 완전히 밀었답니다. 그렇게 눈썹을 밀은 후에 수도원 공동방으로 갔더니 때마침 할아버지 수사님들은 성탄 특집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었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수사님들은 눈썹을 완전히 밀어 얼굴 전체가 하얗게 된 수사님이 공동방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귀신을 본 듯 화들짝 놀랐답니다. 그중에 한 분 수사님이 기가 막힌 표정을 지으며,

“니 보라우, 밖으로 나가라우!”

할 수 없이 그 수사님은 형제들의 도움으로 여성용 눈썹 그리는 것을 산 후에, 새롭게 눈썹을 그렸답니다. 그런데 눈썹을 그려준 형제도 사용이 처음이라 어찌하다 보니 반달눈썹을 그렸답니다. 암튼 그 수사님은 반달눈썹을 그린 후, 연말연시를 수도원에서만 피정하는 마음으로 꼼짝없이 지냈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난 후, 그 수도원에는 외국에서 몇 년 동안 선교를 하던 수사님이 선교 마치고 귀국을 하게 됐답니다. 그리고 다시금 국내 수도원 생활을 적응을 하고 있던 차에, 눈썹이 진하게 그린 그 수사님을 만났답니다. 그러자 선교 다녀온 수사님은,

“아니, 수사님! 눈썹이 왜 그래요? 눈썹에 무슨 낙서하셨어요?” 이 말을 들은 눈썹을 밀은 수사님은 그냥 엉겁결에

“음, 눈썹이 없는 사람은 눈썹을 완전히 밀면 새롭게 더 진하게 난다고 말하기에 며칠 전에 눈썹을 다 밀었어. 그랬더니 진짜로 눈썹이 진하게 나는 것 같아!”

“정말로요?”

그리고 그날 저녁에 수도원에서 선교 마치고 돌아온 수사님을 위한 저녁 식사 겸 조촐한 환영식이 있었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수사님들이 저녁에 식당에 오셨다가 식사도 못 하고 방으로 그냥 가셨다고 합니다. 왜냐고요? 선교 마치고 돌아온 수사님은 눈썹이 얼마 없어 고민하던 차에, 눈썹을 밀면 새로 진하게 난다는 말을 철썩같이 믿고, 눈썹을 완전히 밀고, 식당에 ‘허연 총각 귀신’처럼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 이야기는 그곳 수도원에서 몇 년 동안 전설이 된 이야기랍니다. 그러면서 이 맘 때가 되면 형제들이 그 이야기로 함께 웃을 수 있는 소재가 된답니다. 문득 좋은 공동체란 살면서 겪는 사건·사고를 함께 건강한 웃음의 소재로 만드는 삶을 사는 곳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